면세점 심폐소생시킬 지혜로운 임대인 필요[기고/김선정]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6일 03시 00분


코멘트
김선정 동국대 법대 석좌교수
김선정 동국대 법대 석좌교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면세점 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각국이 앞다퉈 공항을 폐쇄하고 일시에 사람의 이동이 멈춰 섰으니 면세점 영업이 될 리 없다.

정부의 고민도 깊어 보인다. 정부는 응급처치의 하나로 임대료 감면기준을 제시했다. 민간인 사이에서도 ‘착한 임대인 운동’이 번졌다.

그러나 정부 산하기관의 조치 가운데 계약상 임대료의 몇 %라는 식의 감면방식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정부나 공공기관의 임대료 감면은 민간 캠페인과는 다르다. 재정수입 증감과 산업의 활력에 직결되는 정책인 만큼 실효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김해와 김포 국제공항의 출입국은 방역체계상 인천국제공항으로 합쳐졌다. 당연히 두 곳의 면세점은 영업실적이 없다. 두 공항의 셧다운으로 임대계약의 기초가 무너졌다. 사정이 이러한데 여전히 임대료를 내라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판 것 없어도 얼마를 내라는 것보다, 판 만큼 내라는 것이 지혜로운 처방이다. 이는 매출액이 늘어날 때는 임대주체의 수익이 늘어나 그동안 줄어든 수입의 부족분을 만회할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니 무조건 깎아주는 게 아니다. 공항공사가 최근 맺었던 임대료 계약에서 매출에 연동해 임대료를 조정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 점도 참고할 만하다. 코로나 팬데믹은 법리적으로 계약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는 사정변경에 해당하는데, 민법 제286조도 지료증감청구권을 인정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은 언제 멈출지 알 수 없다. 방역 노력만으로 해결될 일도 아니다. 국제적 이동이 예전처럼 회복될 수 없다면 면세점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다. 그때는 재정수입이 주는 게 아니라 아예 없어진다. 실업도 피할 수 없다. 한국 면세점사업이 쌓아온 노하우와 평판도 모두 사라진다.

지금 정부 산하기관은 ‘착한 임대인’이 아니라 ‘지혜로운 임대인’의 모범을 보일 때다. 미국은 대다수 국제공항에서 임대료를 전액 면제하거나 매출연동제를 통해 지원정책을 펴고 있다. 미국에는 예상치 않았던 사후적 사태의 등장으로 계약 목적을 달성할 수 없으면 이에 대한 이행을 강제하지 않는다는 계약좌절(frustration)의 법리가 있다. 법리논쟁을 떠나 미국이 재빨리 정책적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여러 나라가 매출연동제를 택했다. 이 나라들도 재정수입이 아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길게 봤을 때 당장의 수입보다 산업이 살아나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게 중요하고 더 큰 재정적 기여를 할 때까지 필요한 처방에 주력하는 게 좋은 대책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김선정 동국대 법대 석좌교수
#면세점사업#코로나19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