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계급투쟁[오늘과 내일/김광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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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그 아부지 어데 사시노?’ 말 나올 현실
해결 방식마저 계급 투쟁식이어서는 必敗

김광현 논설위원
김광현 논설위원
경제학(Economics)의 원래 이름은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ics)이다. 시간이 지나 주로 마르크스 경제학을 정치경제학이라고 부른다. 1990년대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함께 정치경제학에 대한 관심도 떨어져 영향력과 전공자가 현저히 줄었다. 그런데 때 아니게 요즘 대한민국에서 엉뚱한 ‘정치경제학’이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좌파 경제이론으로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좌충우돌의 정치적 성향 혹은 정치인들이 경제 현실과 정책을 지배하는 현상이다. ‘경제’는 실종되고 ‘정치’만 난무하는 것이다.

최근 한 달이 멀다 하고 등장하는 부동산 대책이 대표적이다. 부유세 성격인 종부세 강화에 이어 가격 통제인 분양가상한제도 모자라 거래허가제까지 등장했다. 이런 초강력 수단마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자 또다시 부랴부랴 7·10대책이 나왔다. 집을 사지도, 갖고 있지도, 팔지도 못하게 옴짝달싹 못하게 해놓고 그 자리에 세금 폭탄을 때리는 정책이다. 청와대가 방향 잡고, 민주당이 압력 넣고, 정치인 출신 장관이 행동에 나서는 모양새다.

정상적인 경제 정책이라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신중해야 할 세금 정책에서 정교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로지 오기와 결기만 넘쳐난다. 그러다 보니 벌써 집 한 채 갖고 있는 것도 죄냐, 집값 오른 건 서울 등 수도권인데 왜 지방에서도 세금 폭탄을 맞아야 하느냐는 불만과 부작용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은 경제 문제를 뛰어넘은 사회·정치 문제다. 계급 문제라는 인식 즉 ‘부동산이 계급’이라는 말도 아주 틀린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가구당 전체 자산 가운데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76% 정도다. 주요 국가 가운데 가장 높다. 월급 올라봐야 집값 오르는 것을 쫓아가지 못한다. 올해 초 남녀 232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우리나라 양극화 심화의 주원인’을 묻는 질문에 1위가 ‘부동산 소유’였다. 2위가 ‘부모의 직업’이었다. 영화 ‘친구’의 유명한 대사 ‘너그 아부지 뭐하시노?’를 ‘너그 아부지 어데 사시노?’라고 바꿔야 할 판이다.

부동산에 의한 불평등 심화는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렇다고 접근 방식까지 정치적, 계급투쟁식이어서는 될 것도 안 된다. 의욕이 현실을 압도해서는 원하는 결과는커녕 정반대의 결과를 내놓기 십상이다. 이것이 역대 정부의 경험이고 이번 정부 들어서만 스무 번 이상의 학습 결과이기도 하다.

운동권 출신 정치 군관들은 이제 경제 정책 현장에서 물러나고, 경제 전문가들이 등장해야 한다. 그래도 쉽지는 않겠지만 해결 가능성이 높아진다. 전두환 대통령은 경제 지식이 거의 전무했다. 김재익 경제수석에게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고 전적으로 믿고 맡겼다. 5공 당시 정치는 몰라도 서민 경제를 포함한 나라 경제는 대단히 좋았다. 김대중 정부 때도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헌재 강봉균 경제부총리 같은 경험 많은 정통 관료들에게 사태 해결을 일임했다. 그 때문에 위기를 극복하고 도약을 준비할 수 있었다.

지금의 대한민국 경제는 과거보다 규모가 훨씬 커졌고 복잡해졌다. 정교한 칼잡이로서 전문가들의 식견과 경험이 더욱 필요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운동권 출신의 현 정부 핵심 인사들 사이에서는 노련한 정통 관료들이 자신들을 속여 먹는다는 인식이 강하다. 작년 5월 당시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와 김수현 대통령정책실장이 마이크가 켜져 있는 줄도 모르고 “정부 관료가 말을 안 듣는다”고 말하고 맞장구치는 장면은 정통 관료에 대한 불신을 여과 없이 드러낸 대목이다. 경제와 전문가는 찾아보기 힘들고 정치와 얼치기만 난무해서는 집값과의 전쟁은 필패로 갈 수밖에 없다. 서민만 더 힘들어진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경제 정책#7·10 부동산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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