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본 적이 없다[오늘과 내일/이승헌]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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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부의 외교 수장이라는 송영길의 막말
외국에서 자기를 어떻게 볼지 생각해보라

이승헌 정치부장
이승헌 정치부장
김정은의 보류 선언으로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간 북한의 대남 공세 기간 동안 여권 인사들은 김여정만큼이나 말폭탄을 쏟아냈다.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을 시작으로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 김두관 의원 등이 있었지만 단연 ‘원톱’은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민주당 송영길 의원이다. 이런 식이었다.

북한이 16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키자 당시 외통위 회의를 주재하던 송 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대)포로 폭파 안 한 게 어디냐”고 했다. 그러더니 백인 경찰에게 목이 눌려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까지 거론했다. “조지 플로이드가 숨을 쉴 수 없다고 했는데 지금 북한의 상황, 제재가 그와 유사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백인 경찰이고, 북한이 억울한 피해자라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대북제재 완화를 요청하겠다”고 했다.

필자는 송 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처음엔 화가 났고 나중엔 겁이 났다. 대한민국 외교안보 이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외통위원장이 어떤 자리인 줄 알면 이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포 발언의 저열함은 차치하더라도, 플로이드 발언은 우리의 유일한 동맹국을 사분오열시켰던 가장 뜨거운 사회적 이슈를 맥락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북-미 관계에 갖다 붙인 것이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완화 요청 발언은 북핵과 관련해 국제 질서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 유엔에서 대북제재 결의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잘 모른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다.

별 탈 없이 선수(選數) 쌓이면 한다는 게 국회 상임위원장이라지만 그래도 외통위원장은 다른 상임위원장과는 다르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실제로 외통위는 18개 상임위 중에서 ‘상원’으로 불린다. 휘몰아치는 국제 지형에서 한국의 전략적 위치를 논의하는 곳이라서 그렇다. 여야를 막론하고 중진이나 차기 대선 주자들이 외통위를 지망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지금까지 굵직한 외교안보 현안은 예외 없이 외통위를 거쳐 갔다. 대표적인 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동의안이다. 여권이 추진하겠다는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동의안도 외통위를 거쳐야 한다.

자연히 외국에서도 보는 눈이 많다. 특히 미국에선 워낙 거물들이 상·하원 외교위원장을 거쳐 가서 외통위원장에 대한 관심이 더 많다. 베트남전 참전용사이자 민주당 대선 후보를 지낸 존 케리 전 국무장관이 상원 외교위원장을 지낸 대표적 정치 거물 중 한 명. 그렇다 보니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 주한외교 사절들이 국회에 할 말이 있을 때 가장 먼저 찾는 사람도 외통위원장이다.

송 위원장이 민감한 외교 이슈에 대해 외통위원장 무게에 걸맞지 않은 말을 하고 다니는 건 개인 자질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미국 때리기가 놀이처럼 일상화된 여권 내 분위기도 더해졌다고 필자는 본다. 86운동권 세대가 중진이 된 민주당에서 1980년대 운동권 사고방식과 문화는 이제 보편적이다. 노무현 정부 때만 해도 고 김근태 의장 등 오리지널 민주화 세대가 한 축이어서 한미동맹에 대한 인식이 80년대 운동권처럼 천편일률적이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다른 말 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아무리 슈퍼 여당이 상임위원장을 독식하고 자기들 세상인 듯해도 국익을 생각한다면 하지 말아야 할 언행이라는 게 있는 것이다. 송영길 국회 외통위원장은 지금이라도 자기가 어떤 자리에 앉아 있는지, 세상이 자기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외교통일위원장 송영길 의원#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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