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의 몽상[이기진 교수의 만만한 과학]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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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논문을 국제저널에 투고한 지 석 달이 넘었는데 연락이 없다. 편집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한참이 지나, 심사위원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늦어서 미안하다는 연락이 왔다. 이해가 됐다. 이런 상황은 한두 사람만이 겪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얼마 전에는 공동 연구를 하는 프랑스 동료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그 고통을 간접적으로 느꼈다. 그는 “지옥 이상의 고통”이라고 말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연필과 노트에 의존하는 나의 강의 준비는 이제 완전히 전자식 노트패드로 바뀌었다. 학생들의 온라인 인터넷 강의는 문제점도 많지만 이제 적응 단계를 지나 궤도에 오른 듯하다. 학생들은 착실히 수업을 듣고, 과하다 싶게 낸 숙제도 혼자 힘으로 열심히 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준비된 학생들에게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이 상황이 더 지속될 것이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미래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젊은 학생들의 미래에 대해서는. 이런 와중에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에서 민간 유인우주선 ‘크루 드래건’을 쏘아 올렸다. 이 우주선은 국제우주정거장과의 도킹에도 성공했다. 처음 우주정거장을 구상한 사람은 1857년에 태어난 소련의 물리학자 콘스탄틴 치올콥스키다. 그는 1893년에 ‘달 위에서’, 1895년에 ‘지구와 우주에 관한 환상’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1920년에는 처음으로 우주정거장을 고안했다. 지금으로부터 딱 100년 전의 일이다. 당시 지구는 스페인독감이 휩쓸던 때였다. 전 세계적으로 약 5억 명이 감염되어 5000만 명에서 1억 명 정도가 사망했고, 우리나라에서도 전체 인구의 약 25∼50%가 감염되어 약 14만 명이 사망했다.

어찌 보면, 그 무렵 우주정거장에서 식물을 재배하고, 인공중력을 만들고, 거대한 거울을 통해 통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그는 단지 몽상가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꿈은 꿈이 아니었다. 그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로켓을 개발하고, 1924년에 우주비행협회를 만들었으며, 1957년에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렸다. 그 꿈이 100년 동안 이어져 머스크에 의해 다시 실현되는 중이다. 우리는 마스크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6개월이 걸렸다. 경제적 문제는 해결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과학자들은 100년 전 우주여행을 언급한 치올콥스키처럼 미래의 꿈을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원점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그보다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지금의 몽상이 젊은이들의 미래에는 현실이 될지, 또 모를 일이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소련의 물리학자 콘스탄틴 치올콥스키#몽상가#젊은이들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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