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어른이 최고의 환경… 지금 우리는 어떤 어른인가[광화문에서/손효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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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효림 문화부 차장
손효림 문화부 차장
아이는 그림을 그릴 때면 너무 좋아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하아, 하아” 하고 숨이 가빠질 정도로 설렜다. “하고 싶은 건 뭐든 다 해 보렴.” 엄마는 기분 좋은 흥분에 들뜬 아이를 늘 응원했다. 딸 셋 중 막내인 아이는 인형도 무척이나 사랑했다. 아빠는 아이와 함께 인형을 만들고, 망치로 나무판을 뚝딱뚝딱 두드려 강아지 집, 벤치를 완성해 냈다. 그럴 때마다 마법을 보는 듯 황홀했다.

최근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동문학상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받은 백희나 작가(49)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구름빵’, ‘장수탕 선녀님’, ‘달 샤베트’, ‘나는 개다’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큰 사랑을 받는 백 작가는 창작의 원천에 대해 “내 안에 어린아이가 있다”고 말한다.

‘구름빵’에 나오는 고양이 남매의 다정하고 유쾌한 엄마 아빠는 백 작가 부모님의 실제 모습이다. 행복한 기억을 간직한 아이가 가슴속에 자리 잡아 영감의 샘물을 길어 올리는 것이다. 몽환적이고 웃음을 쿡쿡 자아내며 따스함을 전하는 작품들은 그렇게 나올 수 있었다.

현재 방송 중인 SBS 인기 드라마 ‘아무도 모른다’는 좋은 어른이 한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는지 정면으로 묻는다. 외로운 고등학생 은호는 이웃집 여성 형사 영진과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되면서 단단한 사람이 되길 꿈꾼다. 악담을 퍼붓던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보육원에서 자란 상호는 사업가로 성공하지만 저주 같은 악담 속 인물이 돼 버렸다. 그에겐 온기를 지닌 손을 내미는 어른이 없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는다. 좋은 어른을 만났다면 자신의 인생이 달라졌을까.

보다 나은 양육법, 더 뛰어난 교육 시스템과 환경에 대한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 개학’이라는 지금껏 가지 못한 길을 가고 있는 데다 하루 종일 집에 머무는 아이들을 어떻게 챙겨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건 뭘까. 그건 자신을 사랑해 주고 지지해 주는 어른이 아닐까. 아이 곁에 좋은 어른이 있는 것만큼 좋은 환경은 없다. 가장 훌륭한 교육은 롤 모델이 되는 어른의 존재 그 자체일 것이다.

백 작가는 일상을 아이의 눈으로 찬찬히 바라보며 소재를 찾고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를 풀어낸다. 작품 속 인물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맑고 유쾌하다. 그가 작품이라는 꽃들을 피워낼 수 있었던 씨앗은 엄마 아빠가 심어준 셈이다.

백 작가는 ‘구름빵’ 저작권 소송에서 패소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매년 봄마다 새 작품을 발표해 왔지만 올해는 이를 못 할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상황을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다. 마음속 행복한 아이가 가진 힘은 생각보다 훨씬 크니까. 그는 다시 일어나 위로와 웃음을 주는 작품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문득 생각해 본다. 지금 아이들이 훗날 어른이 됐을 때 그들의 마음에는 어떤 아이가 자리 잡게 될까. 아이들에게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어떤 어른일까.
 
손효림 문화부 차장 aryssong@donga.com
#백희나#구름빵#양육법#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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