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사무장병원, 공생구조 방치하면 국민건강·건보재정 다 잃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8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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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나 의료법인 명의를 빌려 운영하는 이른바 ‘사무장 병원’에 흘러간 건강보험 재정이 지난해 6489억9000만 원으로 2005년(5억5000만 원)보다 1180배 늘었다.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51만 명이 1년 동안 낸 건강보험료와 맞먹는 금액이다. 일반인이 의사를 고용하거나 명의만 빌려 병·의원을 개설하는 것 자체도 불법이지만, 영리 추구에만 몰두해 국민의 건강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도 결코 가벼이 다룰 수 없는 범죄다.

사무장 병원은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환자에게 불필요한 진료를 권하거나 고가의 약을 처방하기 일쑤다. 브로커를 통해 가짜 환자를 모집하고 실제로 하지 않은 진료와 수술비를 청구하는 사례도 허다하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사무장 의원은 환자 1명당 평균 외래진료비가 34만8000원으로 일반 의원(12만5000원)의 2배를 훌쩍 넘겼고, 환자 1명당 입원 일수도 15.6일로 일반 의원의 8.6일과 차이가 컸다. 반면 시설과 인력은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 지난해 1월 화재로 환자 45명이 숨진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은 경찰 조사에서 부족한 의료 인력으로 과밀병상을 운영하던 사무장 병원으로 드러났다. 단순히 건강보험 재정을 갉아먹는 차원을 넘어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행위인 셈이다.

사무장 병원은 사무장, 의사, 가짜 환자 누구도 손해 보지 않는 공생구조에서 유지된다. 의사는 면허만 빌려주고도 월 수백만 원을 챙기고, 사무장은 건보 재정을 야금야금 축내면서 수익을 올린다. 가짜 환자는 용돈을 받거나 실손보험금을 청구해 이득을 취한다. 그런데 면허를 빌린 사무장과 이를 빌려 준 의료인에 대한 처벌이 미미하다 보니 병원 개설과 폐쇄가 반복되고 있다. 현재 사무장 병원이 취한 부당이득 환수율은 6.7%에 불과하다. 환수율을 높이는 한편, 징벌적인 벌금을 물리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환자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데 동조하며 최소한의 의사 윤리를 저버린 의사는 면허를 박탈하는 등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불법을 저지르고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이런 공생구조는 깨지지 않을 것이다.
#사무장 병원#건강보험#실손보험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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