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수정]일상 속 기부를 통해 행복을 전파하는 사람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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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정 산업2부 차장
신수정 산업2부 차장
수년 전 읽었던 단편소설인데 작가도, 책 이름도 생각나지 않지만 기억에 남아 있는 구절이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자기보다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한 동창이 소위 부잣집으로 시집가서 ‘사모님’으로 살아간다며 그녀를 ‘속물’ 취급한다. 우연히 그녀와 마주친 주인공은 사모님 손에 잔뜩 들려 있는 빵 봉지를 본다. “근처에 보육원이 있어서 아이들 보러 한 달에 한두 번 가는데 아이들이 빵을 좋아해서….” 그녀를 속물 취급하면서 그녀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던 주인공이 자신을 되돌아본다는 이야기다. 소설이지만 아이들을 위해 양손 가득 빵을 사 들고 가는 그녀의 삶이 아름다워 보였다.

부산 일가족 살해,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 같은 흉흉한 사건 속에서 마음을 따스하게 해준 뉴스가 하나 있었다. 평생 과일 장사를 하며 악착같이 모은 400억 원 상당을 고려대에 기부한 김영석(91), 양영애 씨(83) 부부의 이야기다.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도 못 간 양 씨는 “어린 학생들이 걱정 없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름난 부자들이 기부하는 거액 기부도 의미 있지만 평생 덜 입고, 덜 먹고, 덜 쓰면서 모은 재산을 선뜻 내놓는 일반인의 기부 소식은 더욱 감동적이다. 개인 기부가 80%가 넘는 미국에 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한국에서도 일반인의 기부 소식이 잦아지고 있다.

지난달에는 충남 천안시에 사는 김병열 씨(83)가 평생 식당과 슈퍼마켓을 운영하며 모은 37억 원 상당의 재산을 천안시에 기부했다. 6·25전쟁 당시 부모님을 따라 피란 와 천안에 살면서 통장과 노인회 임원으로도 활동한 그는 천안에서 번 돈을 지역에 환원하고 싶다며 이렇게 말했다. “마음을 정하고 난 뒤 마음이 너무 편해 천당에 사는 것 같네요.”

올 8월에는 해병대 상륙기동헬기 ‘마린온’의 추락 사고로 숨진 장병들의 유족들이 조의금 5000만 원을 해병대에 기부했다. 2015년 교통사고를 수습하던 중 크게 다쳐 3년간 투병해 온 서울 영등포경찰서의 김범일 경감은 최근 명예퇴임하면서 2000만 원을 공무수행 도중 다치거나 숨진 경찰관을 돕는 재단에 내놨다.

2007년 개인 기부문화 활성화를 목표로 시작된 아너소사이어티(1억 원 이상 기부자 모임) 회원과 기금 총액도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회원 수와 기금 총액이 각각 1800명, 2000억 원을 넘었다. 아직은 고소득층 사회 저명인사들이 중심이지만 조금씩 기부에 관심 있는 중산층의 참여도 늘고 있다.

올해 5월 방한한 미국의 신발 브랜드 탐스의 짐 에일링 최고경영자(CEO)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소비자들은 탐스의 기부 철학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분들”이라며 “탐스가 아이들에게 기부한 7500만 켤레 중 500만 켤레는 한국 소비자들이 도와준 것”이라고 말했다. 탐스는 신발 한 켤레를 팔 때마다 제3세계 아이들에게 신발 한 켤레를 기부하는 ‘원 포 원(one for one)’으로 유명하다.

한국에서도 일상 속 기부를 통해 자신은 물론이고 남들까지 행복하게 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돈뿐 아니라 자신이 가진 재능을 기부해 사회에 기여하는 젊은이도 많다. 이번에 고려대에 거액을 기부한 노부부를 보면서 “나중에 돈을 벌면 나도 남을 위해 기부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도 많았다. 감동적인 기부 선행이 가져오는 선순환이다. 아름다운 기부로 깊은 울림을 전한 모든 이에게 존경심을 표한다.
 
신수정 산업2부 차장 crystal@donga.com
#고려대 기부#김범일 경감#아너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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