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태호]쌀직불제 하후상박으로 개선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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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이태호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직불제는 정부가 정책 대상자에게 직접 약속한 금액을 지불해 주는 정책이다. 중간에 비용으로 손실되는 금액이 적고 시장 왜곡을 최소화할 수 있어 세계 각국에서 농업정책의 가장 유력한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은 논 면적당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는 ‘쌀 고정직불제’를 2001년부터 시행했다. 2005년부터는 시장가격이 국회가 정한 목표가격에 미달할 때 미달액의 85%를 쌀 고정직불제와 ‘변동직불제’로 보전하고 있다.

그러나 쌀 직불제는 쌀농가의 소득을 안정시키고 규모를 키우는 데 크게 기여했으나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형평성의 문제이다. 고정직불과 변동직불 모두 면적에 비례해 지불한다. 혜택이 면적이 넓은 농가에 집중된다. 농림축산식품부 통계에 의하면 현재 쌀고정직불금 대상 농가 중 재배면적이 0.5ha 미만인 46.3%의 농가가 전체 재배면적의 11.9%를 차지하고 있다. 재배면적이 3ha 이상인 6.7%의 농가가 전체 재배면적의 38.1%를 차지한다. 상위 6.7%의 농가에 전체 쌀 직불금액의 38.1%가 집중되는 반면, 하위 46.3%의 농가에 돌아가는 금액은 전체 쌀 직불금액의 11.9%에 불과하다.

둘째는 수급균형의 문제다. 쌀 직불제가 시작되던 2001년 약 90kg에 달하던 1인당 연간 식용 쌀 소비량은 현재 약 60kg으로 감소했다. 5000만 명의 국민이 1인당 60kg을 소비한다면 300만 t이 필요하나 연간 생산량은 꾸준히 400만 t을 웃돌고 있다. 여기에 약 41만 t에 달하는 의무수입량을 더하면 매년 적어도 100여만 t의 식용 쌀 초과 공급이 발생한다.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가공용, 사료용 등으로 남는 쌀을 소진하려 노력해도 초과 공급 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초과 공급으로 인해 하락하는 쌀 가격을 보전하는 변동직불 예산은 늘어만 간다. 수확기에 쌀을 사들이는 시장격리 정책과 논에 다른 작물을 심도록 유도하는 생산조정제 등을 통해 쌀 공급을 줄이고 쌀 가격을 올리려 애를 쓴다. 하지만 한편으론 쌀 직불제로 쌀 생산을 장려하고 다른 한편으론 쌀 공급 감소정책을 쓰는 형국이라 많은 예산을 들여도 그 효과를 살리기 어렵다.

일찍이 농업 직불제를 시행해 이와 같은 문제들에 봉착했던 경험이 있는 유럽 각국은 농업 직불제를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개선하고 있다.

첫째는 하후상박(下厚上薄)이다. 모든 농가에 동일한 직불금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경작면적이 좁은 소농에는 면적당 지불 금액을 높게 책정하고, 경작면적이 넓은 대농에는 면적당 지불 금액을 낮게 책정하는 것이다. 둘째는 특정 작물의 생산을 장려하는 직불금을 지불하지 않는 것이다. 목표가격이 시장가격보다 높아 생산을 자극하는 변동직불금 제도 같은 정책을 중단하고 쌀농사, 밭농사를 불문하고 작목에 상관없이 면적당 동일한 고정직불금을 지불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직불제 개선의 가장 큰 장점은 그동안 농업정책에서 소외됐던 소농에 혜택을 줄 수 있다. 수가 많은 소농과 밭농가에 대한 지원을 늘려 큰 예산의 증가 없이도 현행 제도보다 더 많은 직불금을 더 많은 농가가 받게 할 수 있다.
 
이태호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쌀 직불제#쌀 농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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