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최민수]예산 절감에만 몰두한 발주 행정의 폐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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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최민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만약 하도급 계약법을 원도급자가 만들도록 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 불공정하다는 심각한 민원이 제기될 것이다. 그런데 국가계약법이나 지방계약법은 어떤가? 민간 입찰자를 대상으로 발주자인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낙찰률이나 계약상대방의 의무 등을 일방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불공정할 우려가 높다고 볼 수 있다.

금융감독원 자료를 토대로 대형 건설사의 2017년 영업실적을 보면 공공토목 부문에서 수천억 원의 적자를 기록한 사례도 발견된다. 2017년 건설업체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1%를 밑돌고 있다. 특히 공공공사에 의존하는 중소기업은 영업이익률이 마이너스인 사례가 많다.

정부는 이러한 폐해를 인정하여 2년 전 최저가낙찰제를 폐지하고 종합심사낙찰제를 도입했다. 그런데 제도 도입 당시에는 90%를 웃돌던 낙찰률이 최근에는 70% 중반까지 하락하고 있다. 즉, 과거의 최저가낙찰제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제도로 전락했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그 근저에는 공공공사의 품질이나 근로여건은 도외시한 채 예산 절감에만 몰두하는 발주 행정이 자리 잡고 있다. 우선, 사업예산의 수립 단계부터 불합리한 사례가 많다. 일례로 최근 노무비 상승이나 주5일근무제, 미세먼지에 따른 공사 중단 등을 반영하면, 예산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실은 단순히 과거의 계약단가를 토대로 사업예산을 편성하는 관행이 여전하다.

공사원가의 산정 기준도 불합리한 구석이 많다. 예를 들어 철근공의 노임단가는 최근 10년간 30% 이상 상승했다. 그런데 ‘철근가공 및 조립’ 공종의 표준시장단가는 2016년까지는 오히려 5%가량 하락한 상태였다.

우리나라와 같이 정부에서 획일적으로 표준시장단가를 정하고, 이를 활용하여 공사원가를 산정하도록 강제하는 경우는 흔치않다. 외국에서는 대부분 민간의 물가조사기관에서 시공단가를 조사·공표하고 있으며, 여러 기관에서 발표하는 다양한 시장조사가격이 활용된다.

획일적인 낙찰률도 문제이다. 우리나라 국가계약법을 보면, 공사의 난이도나 현장 여건과 관계없이 발주자가 정한 낙찰률에 투찰하지 않으면 공사 수주가 어렵다.

일본에서는 저가 낙찰 등에 따른 부실공사를 방지하기 위해 2006년 ‘공공공사의 품질확보 촉진법’을 제정했다. 발주자에게 적정한 예산을 확보해야 할 의무를 부여하고, 원가계산된 공사비를 인위적으로 삭감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최근 국내에서도 발주자와 시공자 간 분쟁이 급증하고 있다. 대부분 공사비와 관련된 것인데, 특히 국가계약법령의 불공정성이 논란이 되고 있다. 국가계약법령이나 계약약관은 발주자와 계약 상대방이 대등한 위치에서 계약이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더 이상 공공공사 현장에서 외국인 근로자, 그것도 불법 체류자를 써야 적자를 면하는 현상이 지속되어서는 곤란하다.
 
최민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하도급 계약법#국가계약법#지방계약법#종합심사낙찰제#표준시장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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