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제천 한 달 만에 밀양 화재참사, 국민은 불안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7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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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대형 참사다. 어제 오전 7시 반경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에 불이 나 37명이 목숨을 잃고 143명이 다쳤다. 1층 통로로 연결된 요양병원까지 화마(火魔)에 휩싸였다면 인명 피해는 몇 배 더 커졌을 수 있다.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로 29명이 숨진 지 불과 한 달여 만의 더 큰 참사는 국민 안전이 얼마나 불안한 토대 위에 있는지를 참담하게 보여준다. 제천 참사 이후 목욕탕 헬스클럽 노래방 등 다중이용시설에 들어갈 때 비상구가 어디인지부터 살핀다는 국민이 크게 늘었다. 그런 불안감의 근저에는 우리 사회 도처에 만연한 안전불감증이 언제 어디서 또 다른 사고를 불러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병원은 불이 나면 신속한 대피가 어려운 이른바 ‘피난약자’가 모인 곳이다. 이번에도 거동이 불편한 70대 이상의 고령 환자와 중환자가 제대로 대피하지 못해 참변을 당했다. “살려 달라”고 외마디 소리를 낼 뿐 병상에 누운 채 꼼짝도 못 하고 유독가스를 마신 환자들이 적지 않았다. 화재 신고가 접수된 뒤 소방대는 3분 만에 도착했고 불길도 2시간 뒤 잡혔다. 하지만 엄청난 인명 피해를 막진 못했다.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지만 소방시설의 부실이 화재를 키운 것은 분명해 보인다. 사망자가 발생한 세종병원과 별관인 요양병원에는 스프링클러가 없었다. 바닥면적 1000m² 이상인 건물에는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그보다 면적이 작은 이 병원은 대상에서 벗어나 있다. 짙은 연기로 현장에 바로 진입하지 못한 한 소방대원은 “초기에 스프링클러에서 물이 쏟아졌다면 피해를 줄였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지난해 12월 제천 화재 이후 소방당국이 전국 다중이용시설을 대상으로 소방 특별점검을 벌일 때 이 병원도 점검을 받았지만 피난시설 관련 미세한 시정조치에 그쳤다.

우리는 2014년 21명의 목숨을 앗아간 전남 장성군 요양병원 화재로 스프링클러 없는 의료시설의 위험성을 목격했다. 정부는 요양병원에 대해 올해 6월까지 3년의 유예기간을 주고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했다. 하지만 대전시가 지난해 지역 52개 요양병원을 조사한 결과 15곳이 설치를 미루고 있었다. 다른 지역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대형 화재가 날 때마다 소방 특별점검에 나서고 안전규정을 강화했다. 그러나 근본적 대책보다는 당장 비난의 화살을 돌릴 대상을 찾는 데 급급했다. 그러다 보니 2015년 경기 의정부시 도시형생활주택 화재, 지난해 12월 제천 화재, 그리고 이번 화재까지 도돌이표같이 참사가 반복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보여주기식 대책으로는 이제 안 된다. 얼마나 희생을 더 치러야 바뀔 것인가.
#밀양 세종병원 화재#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대형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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