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수용]‘그라운드 제로’의 비트코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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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오노레 드 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은 1830년 7월 혁명으로 새로운 세상이 열릴 줄 알았다가 구질서로 회귀하며 상실감이 커진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이 억압의 시대, 최고 가치는 돈이었고 발자크 역시 돈 때문에 글을 썼다. 소설 속 고리오 영감이나 라스티냐크는 각기 다른 이유로 돈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초기 자본주의 시대의 군상을 대변하는 인물들이다. 시대의 변곡점에서 나타난 금전지상주의는 광기의 속성이 있다.

▷디지털 시대가 열리면서 불기 시작한 가상화폐 ‘비트코인’ 열기는 180여 년 전 프랑스 발자크가 보여준 돈 집착증만큼이나 뜨겁고, 그래서 위험해 보인다. 원래는 컴퓨터로 복잡한 연산을 풀며 채굴하는 방식이었지만 지금은 웃돈을 붙인 거래가 폭증세다. 프랑스 중앙은행 빌루아 드 갈로 총재가 2일 “비트코인은 단순한 투기자산”이라고 경고한 데 이어 프랑스 금융시장청 로베르 오펠레 장관은 “이게 만약 화폐라면 극악의 화폐”라고 비판했다.

▷비트코인에 대한 걱정이 태산 같은 쪽은 프랑스인데 정작 가격이 폭등하는 곳은 한국이다. 어제 비트코인 1개당 장중 가격은 최고 2400만 원을 넘었다. 한국인들이 새로운 투자에 특히 환호하고, 돈을 번 사람을 그대로 따라가는 경향도 유난하기 때문일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7일 비트코인 광풍 속 한국을 핵폭탄이 떨어지는 지점을 뜻하는 ‘그라운드 제로’에 빗댔다. 한국 경제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인데 세계 비트코인 거래량의 5분의 1이 원화 결제다. 체급보다 과한 펀치를 휘두르다가 제 풀에 쓰러지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1630년대 네덜란드에서 튤립 한 뿌리 가격이 집 한 채 값에 이르렀던 튤립 광풍과 비트코인은 본질적으로 같다. 투자 대상의 본질적 가치가 거의 없다는 것, 누군가 더 비싼 값을 지불할 때까지만 거래가 이어지는 폭탄 돌리기 등등. 한 가지, 비트코인은 혹여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결제수단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가 있다는 점이다. 이것 때문에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
#비트코인#가상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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