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노지현]당신의 기부금, 잘 쓰이고 있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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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현 사회부 기자
노지현 사회부 기자
“기부금 수입을 수혜대상자에게 가장 많이 쓰거나, 가장 덜 쓰는 곳은 어디인가요?” “운영비가 많다는 건 인건비 지출이 많다는 것 아닌가요?” “평가순위를 1위부터 30위까지 매겨주세요.”

2015년 10월, 퍼붓는 질문에 잠시 침묵하던 한국가이드스타 직원들은 기자에게 자료 주기를 거절했다. 회계전문가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비영리단체 한국가이드스타가 공익법인들의 회계정보를 분석했다는 말에 솔깃해 찾아가 자료를 요구했을 때였다. 기부금 관리를 가장 못한 공익법인 리스트를 줄 수 없다면 제대로 잘 관리하는 단체 리스트라도 알려달라고 했다. 그런 단체는 칭찬받아야 하지 않겠느냐가 내 논리였다. 이마저도 거절당했다. 담당자는 “그런 게 알려지면 이 단체들에만 기부금이 집중되기 때문에 아직 영글지 않은 풀뿌리 공익법인들이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고 말했다.

솔직히 ‘그러면 무엇 하러 기획재정부에서 어렵사리 회계정보를 받아내 분석했느냐’는 반감도 들었다. 같은 비영리단체라고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25년간 시민단체에서 일해 온 박두준 한국가이드스타 사무총장이 이 같은 작업을 한 데에는 속사정이 있었다. 박 사무총장은 기부금을 갖고 야반도주한 선배를 보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공익법인이 회계 관리를 제대로 못했거나 미흡하다고 비난하기보다는 함께 올바른 방향으로 바꿔나가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고 했다. 박 사무총장은 이런 뜻을 수차례 강조했다.

공익법인은 정보공개 의무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다. 회계 정보를 공개할 필요가 없었다. ‘공개해봤자 재무제표를 볼 줄 아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 하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공익법인이 숨기려고 마음먹으면 자료 공개는 더욱 어려워진다.

그래서 한국가이드스타는 상·하위 순위를 매기는 대신 회계정보 자체를 투명하게 공개해 공익법인들이 자연스럽게 경쟁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지난해 선보인 ‘도너비게이터’(도너·기부자+내비게이터)는 일반인도 한국가이드스타 홈페이지(www.guidestar.or.kr)에서 클릭 몇 번으로 공익법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기부금을 얼마 받아 어떻게 쓰는지, 인건비를 비롯한 운영비 비율은 얼마인지, 알기 쉽게 그래프로 보여준다. 객관적 성적으로 보여주자는 취지다. 기부자들은 자신이 기부하는 단체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 이런 움직임을 취재해 ‘투명한 기부시대가 열린다’라는 기획기사를 3회 썼다. 일부 공익법인은 이 정도의 정보공개에 대해서도 “기부금을 부정하게 사용하는 단체가 많은 것처럼 써서 사람들에게 불신을 심어준다”며 항의하기도 했다.

올 6월 한국가이드스타는 통계분석과 비주얼을 더 강화한 도너비게이터 2.0을 선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정보는 부족하다. 국세청에 반드시 회계자료를 공시해야 하는 자산 100억 원 이상 공익법인은 1992개다. 그러나 외부감사자료 전문을 첨부한 단체는 이 중 767개(38.5%)에 불과했다. 공시 의무가 없는 100억 원 미만의 공익법인(5909개) 가운데 자발적으로 외부감사를 받아 공시한 곳은 8.2%(484개)뿐이다.

100억 원이 넘는 기부금을 받아 몇 억 원대 수입차를 사고 해외 리조트에서 고급 요트를 타며 흥청망청 써버린 엉터리 기부단체를 볼 때마다 기부자들의 의심은 커진다. 마음의 문을 닫기도 한다. ‘믿어 달라’고 감정에만 호소할 일이 아니다. 더욱 투명해져야 남을 돕는 지갑을 더 크게 열 수 있다.
 
노지현 사회부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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