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반도 비핵화’의 終焉, 대북전략 완전히 새로 짜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4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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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어제 낮 6차 핵실험을 전격 단행했다.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발생한 인공지진의 규모는 5.7로 측정돼 지난해 9월 5차 핵실험의 5, 6배에 달하는 위력을 보였다. 북한은 핵실험 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장착할 수소폭탄 시험이 ‘완전 성공’했다며 “국가 핵무력 완성의 완결 단계 목표를 달성하는 데 매우 의의 있는 계기”라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김정은은 핵무기연구소를 방문해 ICBM 장착용 수소탄을 살펴본 뒤 “앞으로 강위력한 핵무기들을 마음먹은 대로 꽝꽝 생산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이번 6차 핵실험은 그동안의 핵실험과 비교해 폭발력에서 비약적 증가를 보였다.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위력의 3.3배다. 수소폭탄 1발이면 1개 도시를 초토화할 수 있다. 북한은 “전략적 목적에 따라 (수소탄을) 고공에서 폭발시켜 광대한 지역에 대한 초강력 EMP(전자기펄스) 공격까지 가할 수 있다”고도 했다. 서울 상공에 EMP 폭탄이 터진다면 지휘통제체계, 방공망, 전산장비는 완전 무력화된다. 상상하기도 끔찍한 사태다.

이제 북한은 핵탄두를 탑재한 핵미사일을 양산해 실전배치하는 일만 남았다. 이미 다종의 미사일 시험발사로 미국 본토까지 위협하고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앞으로 어떤 경우에도, 빈말로라도 핵 포기 약속 같은 것은 절대 하지 않을 것임을 거듭 확인했다. 나아가 협상에 나선다면 ‘핵보유국’이란 완장을 차고 김정은 체제의 안전보장을 전제로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군 철수를 관철할 속셈이다.

김정은은 9일 정권수립 기념일(9·9절)과 다음 달 10일 노동당 창건 기념일을 대대적인 자축 행사로 치를 게 분명하다. 북한은 ‘핵-경제 병진노선’의 승리로 규정하고 무모한 도발을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는 국제사회의 철저한 고립을 자초하고 자멸(自滅)을 재촉하는 길이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위험한 도박을 더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전면적인 경제적·군사적 봉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김정은은 그동안 자신의 체제를 지탱해주던 중국까지도 원유 공급 중단 같은 생명줄을 끊는 쪽으로 몰아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북한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표출하며 “국제사회와 함께 최고의 강한 응징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다만 정부 관계자는 “긴 호흡으로 가야 한다”며 ‘제재와 대화의 병행’ 기조는 유지할 방침이라고 했다. 과연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정부는 ‘북한 비핵화’라는 무의미한 목표를 내건 대화에 더는 기대를 걸어선 안 된다. ‘핵보유국 북한’을 상대하기 위한 대북 전략을 완전히 새로 짜야 한다.

당장 우리 머리 위에서 핵무기가 꽝꽝 생산되는 마당에 언제까지나 태평양 건너 미국의 핵우산과 확장 억제에만 기댈 수는 없다. 정부는 여전히 세계적 핵 비확산 체제를 존중한다는 입장이지만 1991년 남북이 채택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이미 사문화된 지 오래다. 한반도 비핵화가 아닌 ‘한국 비핵화’가 되어 버린 이 선언에 우리만 매달릴 이유가 없다. 전술핵 재배치와 핵잠수함 도입, 독자적 핵무장 잠재력 확보 등 자체 핵 억지력 구축에 더는 머뭇거려선 안 된다.
#한반도 비핵화#북한 6차 핵실험#1991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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