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이덕주]헬기 ‘수리온’, 법과 기술은 별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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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주 KAIST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이덕주 KAIST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수리온을 개발·생산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비리와 관련된 검찰의 수사가 계속되고 있다. 우리 장병들을 태울 헬기를 두고 비리를 저지른 경영진은 법으로 엄하게 다스리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수사와는 별개로 이미 개발한 수리온을 최대한 활용해 국방은 물론이고 재난 대처와 의료, 농업 부문의 서비스 질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하는 일을 멈춰선 안 된다.

미군의 블랙호크(UH-60)는 개발 후 초기 2만 비행시간 동안 10여 건의 사고를 겪었고 3만 비행시간 동안에는 20여 건의 사고가 있었다(미 육군 항공의학 연구소 보고서). 수리온은 아직 정확한 데이터가 공개되지 않았지만 비행 추정시간 2만∼3만 시간에 언론에 나온 사고 건수는 8∼10건이다. 외산 명품 헬기를 포함해 현재 개발되고 있는 모든 회전익 항공기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이런 시행착오들을 겪으며 개량돼 왔다.

감사원이 대표적으로 지적한 수리온의 결함 중 하나는 체계 결빙 시험 누락이다. 미국에서 실시한 체계 결빙 시험에서 101개 항목 중 29개 항목이 불합격을 받았음에도 일선 부대로 다시 납품돼 배치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알려진 대로 전문가 위원회의 결정에 따른 조치였다. 블랙호크를 포함한 타 기종들도 전력화 후 3∼5년이 지나서야 체계 결빙 시험을 통과하는 수순을 밟았다.

모든 기종에서 세계와 경쟁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수리온 같은 특정 헬기와 무인헬기, 드론 등에서 비교 우위에 있다. 필자가 미국헬리콥터학회 부회장으로 참석한 차세대 회전익 기술 포럼에서 한국의 틸트로터 무인기(회전익의 축을 기울여서 헬기처럼 이착륙하면서도 프로펠러 비행기처럼 운항하는 무인기) 기술이 소개됐는데, 그 현장에서 외국 회사 사장단이 보인 감탄을 잊을 수 없다.

수리온 개발 과정에서 얻어진 원천기술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값진 것이다. 그러나 국민적 지지 없이는 어떠한 기술도 진가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지금은 개발 과정에서 나온 비리에 가려진 독자적인 기술을 더 가다듬고, 한평생 묵묵하게 헬기 개발에 헌신한 엔지니어와 조종사들을 격려할 때다. 그래서 더 안전하고 경쟁력 있는 제2, 제3의 수리온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다.

이덕주 KAIST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헬기#수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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