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상훈]한미 FTA, 꿀릴 것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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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경제부 차장
이상훈 경제부 차장
1980년대엔 한국 경제사(史)에서 중요한 변곡점으로 기록될 몇 가지 일들이 나타난다. 1980년대 초반에 달성한 소비자물가 상승률 연 2%대와 함께 1983년 1인당 국민총소득(GNI) 2000달러를 넘어선 게 대표적이다.

지금이야 3만 달러를 바라보고 있지만 그해 달성한 국민소득 2154달러의 의미는 대단했다. 1953년 한국의 1인당 소득이 67달러였으니 30년 만에 32배로 성장한 셈이다. 우리가 얼마나 가난했는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성장했는지가 이 숫자에서 잘 드러난다. 성장 드라이브, 한강의 기적이라는 수식어가 비로소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숫자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끼니 걱정을 떨치자마자 한국은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난관에 직면하게 됐다. 바로 미국의 통상 압력이었다. 1985년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은 한국을 불공정 무역의 대표 국가로 지목하며 포문을 열었다. 한국에 영원히 원조를 베풀 것 같았던 미국의 공세는 매서웠다. 1년여간의 협상 끝에 보험, 음반, 영화, 담배 시장이 개방됐다. 1987년에는 “한국은 매년 30억 달러 정도 경상수지 적자를 내는 게 맞으니 원-달러 환율을 내리라”는 요구까지 나왔다. 건국 이래 첫 경상수지 흑자(28억 달러)를 낸 게 1986년이니 ‘벼룩의 간을 내먹는다’는 말이 틀린 게 아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글로벌 통상의 주도권은 강대국들이 쥐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화법이 거칠고 직설적이라서 도드라질 뿐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높이기 위한 세계시장 개방’이라는 미국 통상정책은 그대로다.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경제 보복은 강하고 질기다. 일본은 유럽연합(EU)과 경제동반자협정(EPA)을 체결하면서 “한-EU 자유무역협정(FTA)보다 높은 수준의 시장 개방”을 목표로 내세웠다. 통상 전쟁은 피아(彼我) 구별이 명확한 안보 동맹과 다르다. 적과 동지가 수시로 바뀔 수 있다.

미국이 요구하는 한미 FTA 재협상을 두고 갑론을박이 거세지만, 해답은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다. 수입 자유화, 한미 FTA 첫 협상 때의 경험을 되살려 보자. 수입 규제 빗장이 둑 무너지듯 한꺼번에 열리면서 수입차, 수입 가전, 외국산 쇠고기, 바나나 등이 차례로 밀려왔다. ‘이러다간 한국 산업이 통째로 망한다’는 말까지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기우에 불과했다. 외국산 재고 제품의 ‘떨이 시장’이었던 한국은 세계 최고의 ‘테스트베드(시험장)’가 됐다. 소니, GE의 경쟁력은 삼성, LG에 밀린 지 오래다. 한미 FTA 협상 당시 진보진영에서 “맹장수술비가 900만 원으로 오른다”며 괴담을 퍼뜨렸지만 결과적으로 5년간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2배로 늘어났다.

자국 물건을 더 팔겠다며 한미 FTA를 고치자는 미국의 압력이 유쾌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마냥 겁에 질려 벌벌 떨 일도 아니다. ‘FTA가 체결되면 빗물 받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식의 과거 잘못된 주장에 혹했더라면 ‘한국만 이득을 챙겨 가는 불평등 협정’이라고 미국이 불평을 늘어놓는 한미 FTA는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꼼꼼히 분석하고 당당하게 테이블에 앉으면 된다. 열린 시장에서 격화될 경쟁의 혜택은 소비자가 누릴 것이다. 경쟁에서 강해진 한국의 기업들은 세계로 뻗어갈 것이다. 한국의 경제사가 이를 증명한다.
 
이상훈 경제부 차장 january@donga.com
#한미 fta 재협상#중국의 사드#국민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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