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우선의 뉴스룸]‘똥통학교’ 구조대를 만들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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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똥통학교.’ 공부도 못하고, 말도 안 듣고, 한마디로 구제불능 사고뭉치 학생이 잔뜩 모여 있는 학교라는 뜻이다. 학생에게 ‘똥’이란 단어를 붙인다는 게 비교육적이고 비인간적이지만 이 조어는 현실에 존재한다. 기자가 다닌 중학교도 이런 부류였다. 교사들은 툭하면 학생들에게 “똥통 ○○들”이란 말을 퍼부었다. 아이들은 그런 교사들을 무시하고 혐오했다. 수업은 엉망이었다. 너무 시끄러워 ‘물리적으로’ 들리지 않을 때가 많았다. 교사들은 아이들이 듣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무시한 채 혼자 말하다 나가버렸다.

주변에 가정환경이 어려운 친구가 많았다. 알고 보면 고운 심성을 가진 아이인데 거친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한 친구는 자신을 비난한 교사에게 욕설과 함께 마시던 음료수를 집어던졌다. 하얀 원피스를 보랏빛으로 물들이던 포도 맛 탄산음료의 향과 빛깔이 기억에 생생하다. 학생에게도 교사에게도 지옥이 따로 없었다.

이제 더 이상 이런 학교가 없기를 바라지만 학교 현장은 갈수록 더 무너진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열악한 지역의 일반고, 더 나아가 중학교의 상황이 심각하다. 오죽하면 “차라리 자 주는 학생이 제일 고맙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새 정부는 일반고를 살리기 위해 외고와 자사고를 폐지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외고 폐지는 ‘똥통학교’의 교육을 살리는 데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다. 외고 간판을 내린다고 우리 교육의 진짜 과제인 이런 학교들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낭만적 환상에 가깝다.

새 정부가 정말 교육을 살릴 마음이 있다면 열악한 일반고와 중학교의 소생을 위해 이들만을 타깃으로 하는 아주 강력한, 특화된 정책과 예산을 마련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교사다. ‘몰아주기’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로 이런 학교에 열정과 내공과 실력을 갖춘 ‘에이스’ 교사들을 집중 배치해야 한다. 사립학교 수준의 건물 시설 등 환경 개선도 필요하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맘 붙일 곳 없는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에게 ‘학교에서만큼은 우리가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반드시 줘야 한다.

일종의 ‘똥통학교 구조대’ 역할을 할 교사의 조건은 △교사의 사명감 △학생의 가정적·경제적 환경까지 꿰뚫는 내공과 전문 상담능력 △강남 엄마 능가하는 입시전문가 수준의 진학·진로지도 테크닉 등을 꼽을 수 있다. 물론 이런 교사가 발령 기피 학교에 스스로 올 가능성은 낮기 때문에 파격적인 인사 인센티브와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 수준 높은 선발 기준을 마련한다면 기꺼이 구조대가 되겠다고 나서는 훌륭하고 아름다운 교사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반고’라고 하지만 그 일반고가 다 같지 않다는 건 국민 누구나 안다. 이 현실을 부정한 채 외고 자사고만 없애면 평등교육이 이뤄진다고 말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강남 특별고’ 전성시대를 탄생시킬 뿐이다. 새 정부는 ‘똥통학교’만을 위한 정책을 만들고 강남 엄마와 붙어도 이길 수 있는 공교육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그리 하지 못한다면 학교의 낡은 벽마다 붙어 있는 ‘꿈과 끼를 키우는 교육’이란 구호는 아이들을 기만하는 사기 구호일 뿐이다. 새 정부가 반드시 역전의 성공신화를 쓰기를, 그래서 진정으로 국민을 위했던 교육 정부로 기억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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