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역사적 범죄자 안 되겠다던 국정원 또 불법감청 의혹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5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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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이 2012년 1월과 7월 이탈리아 소프트웨어 업체인 ‘해킹팀’에서 휴대전화 전방위 해킹이 가능한 ‘RCS(Remote Control System)’ 프로그램을 구입한 사실을 인정했다. 어제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이 장비를 사찰용으로 사용한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대선 당시 원세훈 국정원장이 심리전단에 인터넷 정치성 댓글을 달도록 지시해 2심에서 선거법 위반 유죄 선고를 받아 구속 수감돼 있다. 국정원이 휴대전화와 카카오톡 문자 등을 불법 감청했거나 해킹을 했다면 심각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이병호 국정원장은 “대북 정보전을 위한 연구개발 차원에서 구입했다”며 “과거처럼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사찰) 활동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떠한 처벌도 다 받겠다”고 사찰 의혹을 완강히 부인했다. 3월 인사청문회에서 “정치 개입이 국정원을 망쳤다”면서 “결코 역사적 범죄자가 되지 않겠다”던 이 원장의 말을 믿고 싶다. 사이버공간이 21세기의 새로운 안보 위협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국정원이 최첨단 기술을 연구해야 했다는 설명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국정원은 권위주의 정권 시절은 물론이고 김대중 정부 때까지 휴대전화 도청을 계속해 임동원 신건 전 국정원장이 처벌받은 전력이 있다. 이 때문에 이 프로그램을 구입한 35개국 97개 정보기관 중 유독 한국에서만 해킹 의혹이 나오는 것이다. 이 국정원장도 언론 보도가 나오기까지 RCS 구입 여부를 몰랐다니 국정원에서 하는 일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국회 정보위 위원들이 해킹 프로그램 실태를 검증하기 위해 국정원을 방문하기로 여야가 합의한 만큼, 국정원은 의혹이 남지 않도록 협조해야 할 것이다.

차제에 선진국처럼 국가안보와 국민의 안전, 테러 방지를 위해 휴대전화 감청을 할 수 있는 법을 만들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도 통신비밀보호법은 휴대전화 감청을 허용하지만 이동통신사에 감청장비를 설치할 법적 근거가 없다. 북의 사이버테러에 맞서야 할 정부의 감청장비 도입을 무조건 막는 것도 능사는 아닐 것이다. 휴대전화 감청의 목적을 엄격히 제한하고 감청의 오·남용을 막으면서 이동통신사에 감청장비 비치를 의무화하는 입법은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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