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글로벌 경쟁력 과제 안고 닻 올리는 ‘이재용 삼성’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7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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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그룹 지배구조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계열사인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한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흡수합병하는 형식이지만 통합법인의 사명(社名)은 글로벌 브랜드 인지도와 창업정신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으로 정했다. 제일모직과 삼성SDI 합병, 삼성SDS와 제일모직 상장, 석유화학 및 방위산업 계열사 매각에 이어 삼성의 사업구조 재편에서 큰 획을 긋는 결정이다.

이번 합병을 통해 삼성그룹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전자부문, 삼성생명을 축으로 하는 금융부문, 삼성물산의 건설 및 서비스 부문 등 ‘3각 편대’로 재편된다. 제일모직은 지난해 말 주식시장 상장을 마친 뒤 글로벌 시장 확대를 추진 중이다. 삼성물산은 해외사업의 경험이 풍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그룹 측은 두 기업이 합쳐 창출하게 될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삼성그룹이 미래의 먹을거리로 관심을 쏟는 바이오산업 육성에 탄력이 붙을지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결정은 지난해 5월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뒤 사실상 ‘3세대 경영’을 시작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을 강화한다는 의미가 더 크다.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흡수합병함으로써 통합법인인 삼성물산을 통해 그룹의 양대 계열사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에 대한 영향력을 키울 수 있게 됐다. 어제 합병 소식이 알려진 뒤 두 회사의 주가는 삼성그룹 리더십 안정에 대한 기대감 등이 호재로 작용하면서 모두 가격제한폭까지 올랐다.

이 부회장은 지난 1년 동안 사실상 ‘회장 직무대행’ 역할을 해왔다. 그는 부친인 이건희 회장이 맡았던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 자리를 이달 15일 물려받아 31일 취임식을 갖는다. 다음 달 1일 이병철 창업주를 기리는 호암상 시상식에도 부친을 대신하는 자격으로 참석할 예정이다. 이 부회장은 잇따른 해외 기업 인수와 한화그룹과의 빅딜 등을 통해 자신의 경영 스타일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명분보다는 실리를 중시하고 문어발식 사업구조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단기적인 성과주의로 흐를 경우 미래성장 분야에 투자하는 노력이 약해질 수 있다. ‘이재용 삼성’이 택한 사업구조 재편도 이 부회장의 경영권 강화를 넘어 삼성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 때 의미를 지닐 수 있다.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삼성그룹의 미래는 작게는 삼성 및 협력업체 임직원과 가족들, 크게는 한국경제 전반과 연결되어 있다. 이병철-이건희라는 걸출한 창업주 및 2세대 경영자의 뒤를 이어 ‘3세 경영’을 사실상 시작한 이재용 부회장의 책무는 무겁다. 삼성그룹의 경영 투명성과 사회적 책임의식을 더욱 높여나가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제일모직#삼성물산#합병#이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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