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흰소리 선소리 신소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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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따듯한 집밥의 소박함을 보여주는 tvN ‘삼시세끼’가 눈길을 모은다. 예능프로인데도 시끌벅적하지 않고 누군가와 함께 밥을 짓고 함께 먹는 일이 소소한 행복임을 일깨워준다. 만재도의 풍광과 차승원의 음식 솜씨도 관심을 끌었지만, 거친 말과 욕설이 없는 ‘청정 프로’라는 것도 인기에 한몫했다.

그러나 세상은 청정하지 않다. 어느샌가 말 대신 각종 ‘소리’가 넘쳐난다. 좋은 소리면 모르겠는데, 우리말에 ‘소리’가 붙은 말은 대개가 부정적이다.

우선 군소리. 군소리는 하지 않아도 좋을 쓸데없는 말이다. 군소리는 힘 있는 사람이 하면 ‘갑질’이 되기 쉽고, 힘 없는 사람이 하면 핑계가 되기 쉽다.

언중이 헷갈려 하는 소리 중에 대표적인 것이 흰소리 선소리 신소리다. 흰소리는 ‘터무니없이 자랑을 하거나 허풍을 떠는 말’이다. 경기도와 충남 북부지역 등에서는 이를 ‘쉰소리’라고도 한다. ‘형님’을 ‘성님’으로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선소리는 착할 선(善)을, 신소리는 매울 신(辛)을 떠올리기 쉽지만 둘 다 한자어가 아니다. 선소리는 ‘이치에 맞지 않은 서툰 말’로서 ‘생(生)소리’와 뜻이 비슷하다. 신소리는 ‘상대편의 말을 슬쩍 받아 엉뚱한 말로 재치 있게 넘기는 말’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신소리를 ‘듣기에 거슬리는 소리’ 또는 ‘쓸데없는 소리’ 등의 의미로 쓰고 있다.

우리 사회는 정당한 요구에도 ‘볼멘소리’로 타박하는 경우가 많다. ‘발림소리’로 윗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사람이 즐비하고 ‘오만소리’로 참견을 하다가도 잘못되면 사과는 ‘혼잣소리’ ‘모깃소리’로 한다. ‘허튼소리’를 ‘우스갯소리’라고 발뺌하는 사람도 있다. 사회가 신뢰와 정의, 정도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어느 장관은 현직 검사를 잠시 퇴직시켜 청와대에 파견하는 것을 문제 삼자 직업의 자유를 막을 수 없다고 했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려는 ‘허드렛소리’에 불과하다. 세상은 앞에서 끌어주는 ‘메김소리’와 뒤에서 받쳐주는 ‘받는소리’가 조화를 이뤄야 잘 돌아간다. 지도자와 국민, 경영자와 사원, 교사와 학생,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그렇다. 자기 소리만 해서는 소음만 키울 뿐이다.

우리 사회에 넘쳐나는 불건전한 ‘갖은소리’를 잠재울 ‘쓴소리’ ‘죽비소리’는 어디에 있는가. ‘외마디소리’를 지르고 싶은 요즘이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삼시세끼#군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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