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376>송가(送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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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가(送歌) ―이재무(1958∼)

모두들 그렇게 떠났다
눈결에 눈물꽃송이 몇 개
띄운 채
입으론 쓸쓸히 웃으면서
즐거웠노라고
차마 잊을 순 없겠다는
말 바늘 끝 되어
귓속 아프게 하고
인연의 매듭 풀면서
가늘게 떠는 어깨
두어 번 두드리고 떠난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오지 않아도 돌아오리란
믿음 지키며 저무는 강가
물살에 닳은 조약돌로 앉아
가는 해를 보내고
오는 밤을 맞았다
그런 날들의 먼 인가의 불빛은
물빛으로 반짝거렸고
살아온 생이
뿌리에서 떨어져 나온 나뭇잎처럼
쓸쓸했다 강물은 뭍으로 올라와
생의 출발을 서두르고 재촉했지만
사소한 바람에도
낮고 축축한 울음을 낳던
갈대의 몸에 묶인 마음을
끝내 움직이진 못했다
조약돌에 이끼가 살고
물때가 제법 무성해지자
어느 먼 마을에서 온
개망초 하나
눈물인 듯 울음인 듯
내 곁에서 꽃을 피웠다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항상 변하는 여자의 마음’, 오페라 ‘리골레토’의 아리아 ‘여자의 마음’이 유명해진 이래 갈대는 변덕스러운 마음의 표상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이 시를 읽으니 또 다르게, 뿌리 내린 땅을 호리호리한 몸으로 검질기게 붙들고 있는 갈대의 모습이 선히 떠오른다. ‘모두들 그렇게 떠났다’, 저 깊이 묻혀 있던 지난 이별들의 상심을 한 이별이 새삼 들쑤신다. ‘인연의 매듭 풀면서/가늘게 떠는 어깨’, 이별에 처한 여자가 보일 법한 이 연약한 모습은 화자의 것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지. 화자는 항상 더 사랑하는 사람이었나 보다. 눈물을 보이고 ‘차마 잊을 순 없겠다’며 떠난 그들을 화자는 잊지 못하고 ‘돌아오리란/믿음 지키며’ 기다렸단다. 화자는 좀체 마음이 변하거나 흔들리는 사람이 아닌 게다.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그 강변에서 ‘가는 해를 보내고/오는 밤을 맞았’던 날들, 화자는 ‘사소한 바람에도/낮고 축축한 울음을 낳던 갈대’였어라. 아, ‘먼 인가의 불빛은/물빛으로 반짝거렸고/살아온 생이/뿌리에서 떨어져 나온 나뭇잎처럼/쓸쓸했’던 날들. 이제는 모든 게 다 지난 일. 어떻게 그날들을 지나왔을까. 화자는 갈대인 제 곁에 함초롬히 꽃피운 개망초를 서늘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그대, 알지 못할 ‘어느 먼 마을에서 온’ 사람이여. 알지 못할 ‘어느 먼 마을’로 간 그대들이여. 생각느니 인연이란 눈물겹구나. 물안개 자욱한 강가를 배경으로 마음의 습지를 담은 시다. 눈물 많고 정 많은, 사나이 갈대의 순정.

황인숙 시인
#이재무#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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