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연]존경받는 工大人을 위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김상연 과학동아 편집장
김상연 과학동아 편집장
요즘 공대생을 ‘취업깡패’라고 부른단다. ‘취업대세’란 점잖은 말을 쓰다 상황이 ‘세지다’ 보니 과격한 말로 바뀐 모양이다. 실제로 요즘 국내 대기업은 신입사원의 70∼90%를 공대생으로 뽑고 있다. 꼭 제조업에 국한된 것도 아니다. 공대 특유의 합리적인 사고방식이 요즘 기업에 잘 맞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후배 기자가 만난 한 공대생은 “취업난이라는 말이 크게 와 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공계 기피 현상’이라는 말이 나온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놀라운 반전이다. 과학전문기자가 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회사까지 옮겼는데 1년도 안 돼 학생들이 이공계에 진학하지 않는다며 난리였다. 사실 이공계 기피 현상보다 ‘의대 열풍’이 더 문제였다. 예전에는 가장 똑똑한 학생들이 물리학과나 전자공학과로 진학했는데, 이제는 전국의 의대, 치대, 한의대를 한 바퀴 돈 뒤 이공계 학과에 왔다. 한때 이과반이 문과의 2배였는데 어느새 역전이 됐다.

상실감에 젖어 있던 이공계 교수들을 이렇게 위로했다. 자본주의 사회는 부가가치를 많이 창출하는 분야에 사람들이 몰린다, 우리나라는 제조업으로 부가가치를 쌓아 온 나라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제조업의 중심은 역시 이공계다. 제조업에서 돈을 못 벌면 병원은 무슨 돈으로 가겠느냐, 연어가 돌아오듯 학생들이 다시 돌아올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 벌써 고교에서는 이과반이 늘어난다고 한다.

그런데 이걸로 된 걸까. 10년, 15년 인고의 세월을 보상받았으니 충분한 걸까. 의대 인기가 한창일 때(지금도 그렇지만) 과학올림피아드 수상자들에게 진로를 물어보면 의대가 압도적이었다. 다들 이유가 있었지만 어떻게 수재만 됐다 하면 적성이 죄다 의대로 변할 수 있을까. 지금의 공대 인기를 보면 비슷한 걱정이 든다. 공대도 적성이 맞아야 공부하는 과정이 즐거운 법이다. 아직은 좀 이른 걱정이긴 하지만.

이번 달 과학동아 마감을 하는 중에 이래저래 공대를 다룬 기사가 많았다. 다른 후배 기자가 이번엔 교수를 인터뷰하고 돌아왔다. 그 교수는 공대에서도 돈 잘 벌 수 있는 통신 분야를 전공했다. 그런데 허전했다고 한다. 돈으로 채울 수 없는 갈증이었을 게다. 그래서 사람을 돕는 공학을 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 교수가 선택한 것은 자기공명영상(MRI) 장치였다. 6개월 전 직접 만난 다른 공대 교수는 인터뷰 내내 ‘소명’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두고두고 심심한 인터뷰였지만 가장 기억나는 인터뷰 중 하나였다.

한의대가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길지는 않았다. 누구는 비아그라 때문이라고, 누구는 홍삼 때문이라고, 누구는 건강보험 때문이라고 한다. 의사의 인기도 예전처럼 확고하지는 않다. 1년 전 대중 강연에서 만난 한 의대 교수는 “졸업하고 수도권 진입하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의대 가는 게 잘못된 선택이라는 게 아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10년도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더욱 그럴 것이다.

요즘 같은 취업난에 대기업에 취업하고 싶어 대학을 가는 건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게 현실인데 왜 현실적인 이유를 비난받아야 하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싫다고 하면 그건 위선에 가깝다. 공대 가는 것 좋다, 의대도 괜찮다. 법대나 경영대면 어떤가. 그래도 다른 뭐 하나는 가슴 한구석에 있어야 한다. 이런 불확실한 세상에선 의외로 그 하나가 살아갈 희망을 줄지 모른다.

김상연 과학동아 편집장 dream@donga.com
#공대생#취업깡패#제조업#이공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