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복지 조정도, 증세도 안 된다면 빚더미 남길 셈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0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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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정치권에서 일고 있는 복지와 증세 논쟁과 관련해 “증세론은 국민 배신”이라며 ‘증세 없는 복지’로 계속 갈 뜻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어제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경제 활성화가 되면 세수가 자연히 더 많이 걷히게 되는데, 경제 활성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고 세수가 부족하니까 세금을 더 걷어야 된다는 게 국민에게 할 수 있는 소리냐”며 여야 지도부에 직격탄을 날렸다. 정부가 요청한 경제활성화법만 국회가 통과시키면 경제가 살아나서 증세 없이도 무상 복지 공약을 다 지킬 수 있다는 의미로 들린다.

증세 없이 선거공약을 지키겠다는 대통령의 다짐이 실현 가능하다면 누가 반대하겠는가. 하지만 서비스산업 육성 법안 하나만 놓고 봐도 ‘민생 경제’를 강조하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에게는 재벌만을 위한 법으로 보일 것이다. 여야 의견이 상충된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법안 통과는 쉽지 않다. 설사 국회에서 법이 통과한다 해도 경제가 당장 불같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박 대통령이 ‘증세 없는 복지’를 위해 지하경제 양성화와 세출 조정 등을 누누이 다짐했음에도 지금껏 눈에 보이는 성과는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박 대통령이 새로 뽑힌 문 대표를 비롯한 여야 지도부와 ‘소통’을 통해 법안 처리 협조를 요청하는 대신 ‘정면 대결’을 택한 태도는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 새누리당의 경제통으로 꼽히는 이한구 의원은 “경제 활성화를 위한 단기 정책은 국회 비협조 때문에 안 되는 것도 있지만 경제 정상화, 주로 구조 개혁과 관계된 것은 정부 스스로도 노력을 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무원연금 개혁만 해도 정부가 공무원노조의 눈치만 보고 있고, 노동 개혁도 노사정위원회에 떠넘기는 식이어서 진척이 되지 않고 있다. 그러니 기업이 자신있게 투자하지 못하고 국민은 지갑을 열지 못하는 것이다.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복지 공약 이행에만 135조 원이 필요하다. 박 대통령이 자신의 약속과 원칙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수가 줄고 재원 조달이 힘든 상황에서는 국민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면서 복지 조정이든 증세든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아니면 미래 세대에 빚더미를 떠안기는 국채를 발행해야 할 판이다. 복지 천국을 앞세우며 정치권이 섣부른 증세 카드를 꺼내는 것도 문제지만 대통령이 지키지도 못할 ‘신뢰 브랜드’에 매달리는 것은 더 큰 문제다.
#복지#증세#증세 없는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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