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치가 몰고 온 러시아 디폴트 위기, 남의 일 같지 않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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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루블화 가치 폭락으로 디폴트(채무 불이행) 상황에 몰리고 있다. 루블화는 올 들어 40% 이상 값어치가 떨어져 러시아 시장이 1998년 모라토리엄(채무 지불 유예) 사태와 맞먹는 패닉에 빠졌다. 러시아가 환율 방어를 위해 15일 기준금리를 10.5%에서 17%로 단숨에 올리는 비상조치를 취했음에도 달러는 무섭게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러시아 위기는 복잡한 국제적 정치·경제 상황에서 비롯됐다. 미국의 셰일가스 개발과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원유가 인하로 인한 국제유가 급락이 큰 원인이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잘못된 정치가 자초한 측면도 상당하다. 유가가 100달러를 웃돌던 시절 푸틴은 수출의 3분의 2, 국가예산의 절반을 석유에 의존하며 시장경제를 키우지 않았다. 권위주의에 도전하는 민간 기업을 빼앗고, 특히 에너지 기업을 중심으로 곳곳에 측근을 앉혔으며, ‘도둑 체제’라 불리는 부패를 서슴지 않았다. 유가가 떨어지면서 재정이 흔들리자 민족주의를 자극해 올 4월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병합하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이에 미국과 유럽연합(EU)이 경제 제재에 나서 마침내 러시아는 ‘퍼펙트 스톰(총체적 난국)’에 빠진 것이다.

러시아가 금융위기를 맞으면 다른 나라도 안전할 수 없다. 더구나 미국의 금리인상 예고로 신흥국에서 자금이 빠져나가 제2의 외환위기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베네수엘라를 비롯해 인도네시아 브라질 터키 등이 약한 고리다. 한국은 대(對)러시아 무역 규모가 전체의 2%에 불과하고 지난해 신흥국 자금 탈출 때도 이상 징후가 나타나지 않아 당장 불안해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러시아발 시장 불안이 국제금융시장 전반으로 전염되거나 가뜩이나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제기되는 유로존 경제를 억누를 경우 한국 역시 영향권에 들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시장경제를 무시한 푸틴의 강압적 정치가 어떻게 나라를 무너뜨리는지 러시아가 보여준다. 한국도 정쟁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경제활성화 법안을 통한 구조개혁에 힘을 모아야 한다. 정부와 금융·통화 당국은 면밀하게 관찰해 선제적 대응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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