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큰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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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의 계절이면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친목모임을 함께하는 한 분이 고3 아들을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날마다 밤 12시를 넘겨 귀가했다. 업무가 많은 데다 술자리를 즐기기 때문이었다. 아들의 수능시험 전날에도 예외 없이 술에 잔뜩 취해서 새벽 2시에 귀가해 자고 있는데, 아침 일찍 아들이 방문을 두드리며 이렇게 말하더란다.

“아버지, 잠깐만 나와 보세요.”

잠이 덜 깨어 거실로 나오니 아내가 눈을 흘기고 있는 것 아닌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수능시험을 본다는데도 신경을 쓰지 않는 남편이 미워서였을 게다. 부모의 신경전을 모른 척하며 아들은 두 분을 나란히 앉게 하더니 넙죽 큰절을 했다.

“어머니 아버지, 저를 이만큼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시험 잘 보고 오겠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그 말에 술이 확 깨었다면서 정신이 번쩍 나 얼른 옷을 갈아입고 아들을 고사장까지 태워다 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기특한 그분의 아들은 누구나 선망하는 대학에 턱 붙어서 우리를 부럽게 했다. 의젓한 데다 공부까지 잘하니 얼마나 좋을까. 그날 나는 집에 돌아와 천하태평인 내 아들 뒤통수에 대고 남몰래 눈을 흘겼었다.

오늘 아침에 위인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읽다 보니, 아인슈타인은 20세기의 천재라는 말이 무색하게 대학입시에서 낙방했다고 한다. 수학과 물리 과목은 잘했지만 지리와 역사 과목은 낙제였다는 것. 어디 아인슈타인뿐인가. 에디슨은 부산스럽고 산만해서 초등학교 입학 3개월 만에 퇴학당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포기하지 않고 사랑으로 교육했다.

에디슨이 수많은 시도 끝에 마침내 전구에 불이 들어오게 했을 때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감동적이다. 옆에서 “천 번이나 실패하고서야 성공했다”고 비꼬자 “천 번 실패한 게 아니라 전구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 이유 천 가지를 알아낸 것”이라고 응수했다고 하지 않나. 그러한 긍정의 힘은 초등학교에도 적응하지 못한 아들을 감싸고 격려하여 훌륭한 발명가로 키운 어머니의 영향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수능시험이 끝났다. 어차피 시험이라는 것은 1등부터 꼴등까지 줄을 세우는 일이다. 이제는 결과를 떠나서 부모는 건강하게 잘 자라 수능시험을 본 자녀를 대견하게 여기고, 자녀는 지금까지 뒷바라지해준 부모에게 큰절을 올릴 수 있다면 좋겠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수도 있다는 긍정의 힘을 우리 함께 믿어보면서 말이다.

윤세영 수필가
#수능#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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