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수]중국어민의 만세삼창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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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수 사회부 차장
김상수 사회부 차장
우려하던 일이 터졌다. 10일 불법 조업을 하던 중국인 선장이 해경의 총에 맞아 숨진 사건 얘기다.

이번 일은 중국 어선에 대한 금어기 해제를 앞두고 일어났다. 한중어업협정에 따라 저인망을 사용하는 중국 어선은 금어기(4월 16일∼10월 15일)에 서해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조업을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최근 서해상에서는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이 늘어나는 추세였다. 단속이 뜸해진 데다 중국 어민들 사이에 ‘한국 해경 해체’ 소식이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어족자원이 풍부해 ‘황금어장’으로 통하는 서해에 ‘감시의 눈’마저 사라지니 때를 만난 것이다.

불법조업 중국 어선 단속척수는 지난해 487척에서 올해 9월 말 122척으로 급감했다. 인력이 부족한 데다 사기도 많이 꺾인 게 원인이다. 4월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한 뒤 해경의 함정과 인력이 전남 진도 팽목항에 집중 투입되면서 전력이 분산돼 있다. 곧 ‘없어질 조직’이라는 자괴감도 단속 의지를 약화시켰다. 한 해경 관계자의 말이다.

“팽목항 파견자들을 포함해 해경 대원 상당수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해경 전체가 죄인 취급을 받고 있으니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처지다. 묵묵히 바다를 지켜온 해경으로선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에서 ‘해경 해체’는 세월호 후속대책의 핵심이다. 해경을 폐지하되 국가안전처 산하의 해양안전본부로 개편하고 해경의 수사·정보 기능은 경찰청으로 이관하는 게 골자다. 해경이 본연의 업무와 상관없이 수사·정보 기능을 키워 안전업무를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해경 해체만이 능사인지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원안대로 통과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중국 어선 단속을 예로 들어보자. 해양안전본부 소속이 되는 해경 대원들은 불법 조업을 한 중국 어선을 나포해 와도 중국 어민들을 수사할 수가 없다. 수사권이 없어 경찰청이 이들을 조사하게 된다. 가뜩이나 난폭한 중국 어민들이 단속에 나선 대원들을 우습게 볼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단속한 대원들까지 경찰청 조사를 받아야 되는 묘한 상황이 벌어진다. 과잉진압으로 판단되면 쇠고랑을 찰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적극적인 단속을 기대하기 어렵다.

해경의 인력은 총 1만1198명. 조직이 개편되면 이 가운데 900여 명의 수사·정보 인력은 경찰청으로 넘어가고 나머지 1만여 명이 신설되는 해양안전본부 소속이 된다. 수사·정보라는 ‘눈과 귀’를 다 막은 경찰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비단 중국 어선뿐 아니라 국내 어선들의 불법 조업 감시와 독도 경비, 구난구조 등 바다의 경찰이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정보력이 필수다.

그런 면에서 보면 야당의 대안이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국민안전부를 신설하고 해경은 해체 없이 해양안전청이나 해양경비청으로 명칭을 변경해 국민안전부 산하의 별도 외청으로 두는 안이다. 정부조직법 개정은 이달 안에 세월호 특별법과 함께 처리될 예정이다. 세월호 사고에서 해경이 보인 무능함은 백번 꾸짖어 마땅하다. 하지만 해경 해체라는 ‘극약 처방’보다는 해상 범죄에 대한 수사권 유지 등 보완책으로 풀어가는 게 맞다.

제주도 어민단체 대표 10여 명이 7월 중국 저장(浙江) 성 저우산 시의 한 항구에서 어민 대표 6명을 만난 일이 있다. 상호 교류를 논의하는 자리였는데 갑자기 들어온 중국 어민들이 “한국 해경이 해체되는 게 맞느냐”고 확인한 뒤 박수를 치며 만세를 외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김상수 사회부 차장 ssoo@donga.com
#불법 조업#중국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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