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無主空山은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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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섭 산림청장
신원섭 산림청장
서울 정동길에 가면 2007년에 개관한 주한 캐나다대사관이 있다. 대사관 건물은 V자 형태의 독특한 구조다. 나이가 520년이나 된 회화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건물 면적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부득이 V자 형태의 건물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캐나다인들의 나무 사랑을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우리나라는 상황이 조금 다른 듯하다. 상점의 간판을 가린다는 민원 때문에 가로수의 가지를 과도하게 잘라낸다.

전국 곳곳의 산림에서 불법적인 벌채가 벌어지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적발된 불법벌채 사례만 무려 410건이다. 무주공산(無主空山)이라는 생각으로 아무 산에나 들어가 나무를 베어도 된다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이보다도 더 심각한 사례가 있다. 불법 산지전용이다. 허가를 받지 않고 산림을 통째로 훼손시킨 후 완전히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다. 작년 한 해 동안 적발된 사례만 해도 1817건이고, 면적으로 따지면 333만 m²(약 100만 평)나 된다. 산림 당국의 보호·단속활동에도 불구하고 불법적인 산림 훼손 행위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잘못된 제도의 한계도 있다. 과도한 벌기령(벌채가 허용되는 나무의 연령) 규제가 그것이다. 예를 들어 시장에서는 20∼30년생 참나무의 수요(펄프·보드용 목재칩, 표고자목 등)가 많은데 법적 허가는 50년으로 묶여 있어 목재 원료가 산업계에 원활히 공급되기 어렵다. 불법적인 벌채행위를 유발하는 구조인 셈이다. 최근 산림청에서는 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벌기령을 적정 수준으로 완화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올해 안에 관련 법령 개정이 완료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불법 산지전용 문제에는 좀 더 복잡한 사정이 있다. 불법 산지전용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제도상 문제이기보다는 국토 면적이 작기 때문이다. 서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수도 인구밀도가 1위다. 사람은 많은데 땅은 적으니 산지 개발에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불법 산림훼손을 없애는 일은 산림청의 ‘비정상의 정상화’ 중점과제로 추진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산지와 관련된 각종 불합리한 규제를 완화하는 작업들도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불법적인 산림 훼손으로부터 산림을 보호해야 한다는 국민의 인식 개선과 사회적 약속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국립산림과학원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산림은 수원 함양, 대기 정화, 토사유출 방지, 산림휴양 등 연간 109조 원의 공익적 가치를 제공하고 있다. 국민 1인당 123만 원에 해당하는 엄청난 가치다. 이런 산림을 함부로 훼손하는 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우리나라에 무주공산은 하나도 없다. 모두가 주인이 있는 땅이다. 지금의 울창한 산림을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땀과 정성을 들어갔을지 한번쯤 생각해 본다면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들 것이다.

신원섭 산림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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