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선 칼럼]전교조는 ‘후미에’를 거둬들여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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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로 하든, 불이익 받든 전교조가 선택할 문제
전임자 복귀 안 시키고 교육감 배려에 기대어
명분과 실리 다 얻겠다는 건 초법적 발상
전교조는 교육감들을 시험에 들게 말라

심규선 대기자
심규선 대기자
1612년 일본 에도막부는 기독교 금지령을 내리고 기독교 신자(기리스탄)를 색출하기 위해 ‘후미에(踏み繪)’라는 것을 만들었다. ‘밟는 그림’이란 뜻이다. 막부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나 성모 마리아 모습을 새긴 금속이나 나무판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밟고 지나가도록 했다. 망설이거나 밟지 않으면 기독교 신자로 간주해 체포했다.

법외노조가 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요즘 행태가 후미에를 떠올리게 한다. 전교조는 70명의 전임자 중 38명만 복귀시키고 32명은 안 보내겠다며 교육감들에게 후미에를 내밀었다. 친전교조인지, 반전교조인지를 보겠다는 태도다. 교육감들은 곤혹스럽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전임자 복직명령 이후의 모든 절차와 처분을 교육감들의 판단에 맡겨 달라고 했다.

언뜻 들으면 전교조 편이다. 그러나 교육감들은 교육부로부터도 후미에를 받아놓고 있다. 교육부는 미복귀자 32명을 8월 1일까지 직권면직하고, 결과를 4일까지 보고하라고 통보했다. 거부하면 직무이행명령과 직무유기고발이 기다리고 있다.

원래 이 문제는 교육부와 교육감이 싸울 일이 아니다. 보내고 안 보내고를 결정할 권한이 없는 전교조가 문제를 만든 것이다. 법외노조가 아니라 초법(超法)노조 같다. 투쟁 중심의 운동방식을 30년 가까이나 바꾸지 않고 있는 전교조를 어떻게 봐야 할지….

전교조가 현실과 괴리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태생 과정의 피해의식이다. 1982년 한국YMCA중등교육자협의회 결성, 1985년 민중교육지 사건, 1986년 교육민주화선언, 1987년 전국교사협의회 결성 등을 동력 삼아 전교조는 1989년에 출범했다. 그 과정은 교육당국의 감시와 징계로 늘 힘들었다. 전교조 결성 후 1500여 명의 교사가 해직돼 4년간이나 고생했고, 합법화된 건 10년이 지나서였다. 그러는 동안 투쟁하고 또 투쟁했다.

두 번째는 성공신화에 너무 빠져 있다는 것이다. 전교조 초창기, 그들이 내세운 ‘참교육’은 암행어사의 ‘마패’ 같았다. 그 앞에서 교육계의 탐관오리와 비인간적인 교육제도는 사시나무 떨듯 했다. 백성들의 박수소리도 드높았다. 그 후 되레 원성까지 들으면서도 암행어사님은 녹슨 마패를 방패 삼아 높은 자리에서 내려오려 하질 않는다.

마지막이 고질이 된 역마살이다. 전교조는 교육이라는 집을 놔두고 밖으로 너무 많이 싸돌아 다녔다. 지금도 그렇다. 이득만 생각하고 눈총은 외면한다. 곤경에 빠질 때마다 정치공학적 해석으로 되받아치거나 권력자의 미움 때문이라며 현실을 왜곡했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올 만도 한데 아직 그럴 마음이 없는 듯하다.

전교조의 법외노조 판결 불복은 세 가지 특성의 복합 부작용이다. 나는 고생을 많이 했으니 특별대우를 받아야 하고, 아직도 순수함을 유지하고 있는데 누가 감히 비판을 하며, 수구꼴통 말고는 여전히 지지자가 많다는 착각이다. 착각은 자유다. 그러나 착각이 법 위에 군림하는 건 곤란하다.

법도 전교조의 존재가치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해직교사 9명의 조합원 자격만 배제하라고 했을 뿐이다. 6만 명 중 9명이 뭐가 문제냐는 전교조의 주장은 배척됐다. 전교조에도 분명 공과 과가 있다. 그와 상관없이 세상은 변했다. 지금이 옛날의 영광만 곶감 빼먹듯 하지 말고 새로운 이미지로 신뢰를 회복할 좋은 시점이다.

전교조의 선택은 간단하다. 법의 판단을 받아들이든가, 거부하겠다면 불이익도 깨끗하게 감수하면 된다. 양립 불가능한 이익을 모두 챙기겠다니 분란이 생기는 것이다. 부당하다는 현행법을 개정하겠다고 한다면, 그건 전교조의 자유이자 권리다.

교육감도 마찬가지다. 미복귀자는 직권면직하는 게 옳다. 전교조만 교육감의 고객이 아니다. 법도 교육감이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다. 전교조는 교육감들을 시험에 들게 해선 안 된다. 나중에 법이 바뀌거나 전교조가 법적 지위를 회복한다면, 그때 가서 면직자의 구제를 논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법과 재량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후미에를 밟지 않고 죽음을 당한 사람도 많지만 후미에를 밟은 뒤 발 씻은 물을 마시는 것으로 속죄를 하며 신앙을 이어간 사람도 적지 않다. 이불(異佛)이라고 해서 부처를 예수처럼, 관음보살을 마리아 상처럼 변조해 놓고 예배를 드리는 신자도 있었다. ‘가쿠레 기리스탄’(숨어 사는 기독교 신자)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렇게 261년을 살아왔다. 후미에도 신앙 밑의 그림이었을 뿐이다.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
#전교조#후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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