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하태원]‘꼿꼿’ 장수의 실패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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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원 정치부 차장
하태원 정치부 차장
4월의 한 일요일 저녁 식사자리에서 마주 앉은 김장수 전 대통령국가안보실장(66)은 대뜸 “너무 힘들고 지쳐요”란 말부터 했다. 지난해 2월 안보실장으로 임명된 뒤부터 문자 그대로 질풍노도(疾風怒濤) 같은 14개월을 보낸 소감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지금까지 쉰 날이 딱 이틀이에요. 하루는 작년 추석 전날, 그리고 올해 설날 당일이에요”라며 웃었다.

청와대 지척에서 만난 그날도 청와대 안보실은 북한 무인기 사건 때문에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김 전 실장은 덤덤했다. 쉽게 말하자면 ‘애들 장난감 같은 수준의 무인기는 우리에게 심각한 안보 위협이 되지 못한다’는 판단이었다.

식사 도중 ‘VIP’라는 발신인으로부터 전화도 받았다. 한 종합편성채널 뉴스가 ‘5·24 제재조치 해제할 듯’이라고 보도하자 해당 내용을 바로잡으라는 지시가 내려진 듯했다. 즉각 류길재 통일부 장관에게 대통령 뜻이 전달됐고, 20여 분 사이에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한민국 외교안보라인의 전화가 줄을 이었다. 김 전 실장이 외교안보 분야의 원톱이자 ‘컨트롤타워’임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청와대 생활은 인고(忍苦)의 나날이었던 것 같다. 가까이서 그를 지켜본 사람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오전 5시 반이면 어김없이 출근해 조간신문을 꼼꼼히 살펴본 뒤 위민관 지하 구내식당에서 주요 간부 및 참모들과 조찬을 하며 하루를 준비했다고 한다. 그 후 청와대 지하벙커로 직행해 하루 종일 상황을 꼼꼼히 챙겼는데 ‘워 룸(war room)’을 운영하는 장수 같았다고 한다. 다만, 모든 외교안보 현안을 군 작전하듯 대응적으로 운영해 큰 틀의 전략을 고민하는 모습은 약했다고 한다.

더 혹독한 평가도 나온다. 성실하고 훌륭한 사람이지만 국가 통일·외교·안보를 종합적으로 통솔할 수 있는 능력은 애초부터 없었다는 것. 한마디로 적소(適所)에 기용된 인사는 아니라는 평가다. ‘여의도’에 대한 이해가 적은 정무수석, 현역 시절(2006년 퇴임) 미국 중국 일본을 다뤄보지 않았던 외교안보수석처럼 말이다.

하지만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꼿꼿 장수’로 스타가 된 김장수가 순진한 무관이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이명박(MB) 정부 시절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해 박근혜 정부 핵심 실세로 떠오른 과정은 불굴의 권력의지를 보여준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여권 인사는 “MB와 친박이 정면충돌하던 상황에서 절묘하게 처신을 잘한 것 아니겠느냐”고 평가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나는 재난상황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취지의 말로 불의의 낙마를 하게 된 22일 그는 ‘쿨’하게 청와대를 떠났다고 한다. 한 측근은 민감한 시기에 발언이 와전된 것에 대해 아쉬워했다. 그는 “김 전 실장이 책임을 회피할 사람은 절대 아니다. 규정에 자신의 권한이 아닌데도 나설 경우 월권한다고 할까봐 자제했고 그런 뜻을 전했는데 외부로 잘못 알려졌다”고 해명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공직자에게 최대 재앙은 자기 몸보다 ‘큰 옷’을 입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 전 실장의 비극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에서 시작된 것 아닐까? 어느 순간 자기 자신보다 더 커져 버린 ‘꼿꼿 장수’라는 이미지가 결국 김장수의 유연성을 제약했을 수도 있다. 성공의 결정적 요인이 실패의 원인이 됐으니 아이러니다.

새 안보실장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 전략의 체스판을 손바닥 보듯 할 수 있는 지략가형이었으면 한다.

하태원 정치부 차장 triplets@donga.com
#김장수#청와대 안보실#세월호 참사#대통령국가안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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