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영식]쿠데타가 후퇴시킨 민주주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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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국제부 차장
김영식 국제부 차장
태국 군부는 20일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쿠데타가 아니다’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실제로 일상엔 큰 변화가 없고 관광도 이어진다지만 국제사회는 이를 쿠데타라고 보고 있다. 세습관료, 군부와 함께 기득권 트로이카로 불리는 입헌군주세력이 상당수인 헌법재판소가 잉락 친나왓 전 총리를 해임한 뒤에 벌어진 일이어서 쿠데타 효과도 이미 거둔 셈이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은 “쿠데타처럼 보이고 그런 냄새가 난다면 그건 쿠데타”라고 규정했다.

태국만큼 군부의 개입이 잦은 나라도 드물다. 1932년 입헌군주제를 채택한 뒤 쿠데타는 모두 18건 발생했고 이 가운데 11건이 성공했다.

2006년 탁신 친나왓 당시 총리가 쿠데타로 실각한 뒤 방콕을 방문해 쿠데타가 그렇게 잦은 이유를 취재한 적이 있다. 당시 만났던 사람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군부가 하나의 거대한 이익집단으로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지나치게 가벼운 처벌과 쿠데타에 대한 국민의 무관심도 부수적인 이유로 꼽을 수 있다. 실패한 쿠데타 주모자들은 기껏해야 몇 달간 감옥에서 지내면 됐고 단순 가담자는 팔굽혀펴기 등 얼차려를 받고 풀려났다고 하니…. 한국에서 군부가 정치 과정에 개입한다면 수많은 넥타이 부대가 시내로 나서겠지만 태국에선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쭐랄롱꼰대에서 만났던 한 학생은 “태국 사람은 소승불교를 믿는다. 나만 열심히 불공을 드리면 다음 세상에서 좋은 기회가 생긴다고 믿기 때문에 사회 변화에 무관심하다”라고 말했다.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레드셔츠나 옐로셔츠만이 시내에 나와 소속 집단의 이익을 외치는 배경인 셈이다.

태국뿐만이 아니다. 아랍의 봄으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던 나라의 상당수가 군부 개입으로 민주주의 퇴보 과정을 겪고 있다. 쿠데타이든 군부 개입이든, 그 결과는 민주주의에 큰 위협이 된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를 통한 정치 과정을 무효화함으로써 다수 유권자의 뜻을 거스르기 때문이다.

이집트 군부가 지난해 7월 선거로 당선된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을 축출한 것도 마찬가지다. 그의 ‘이슬람 통치’에 불만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정당성을 부여하기는 힘들다. 선거가 아닌 ‘광장의 큰 목소리’로 정권을 교체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집트는 26일 대선을 치른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압둘팟타흐 시시가 선거를 통한 대권 장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했던 군부조차 선거로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모습을 보면 민주주의적 절차의 필요성만은 이들에게도 각인된 것처럼 보인다.

태국과 이집트에서 벌어진 상황은 민주주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민주주의가 정착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이들 나라에서 벌어진 일은 과거의 민주주의 틀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시대에는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것을 뜻하는지,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분명한 사실은 민주주의는 단기간에 쉽게 얻기 어려운 지난한 과정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만큼 더 소중하다.

태국이나 이집트에서 실종된 것은 대화를 통한 타협과 협력 정신이었다. 모두가 얘기하지만 서로의 얘기를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현실이 민주주의의 혼란을 가져온 것이다.

민주주의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더 단단해진다. 세월호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는, 더 안전한 대한민국으로 개조하는 작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독단적인 주장보다는 서로의 이해에 바탕을 둔 대타협 정신이 민주적이고 안전한 대한민국 건설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김영식 국제부 차장 spear@donga.com
#태국#쿠데타#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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