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법관 시절 사건 수임한 변호사 징계에 ‘전관예우’ 말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9일 03시 00분


대법관 시절 판결 사건을 수임해 대한변호사협회(변협)의 징계 심사를 받고 있는 고현철 전 대법관 구명운동에 소속 법무법인이 나서 논란을 빚고 있다. 징계위원과 친분이 있는 변호사들에게 ‘잘 봐 달라’는 취지로 청탁을 했다는 것이다. 대법관까지 지낸 변호사가 부적절한 사건을 수임하고 소속 로펌은 부적절한 청탁까지 했다니 법조인의 양식과 윤리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고 전 대법관은 2004년 대법관 재직 중 LG전자의 사내 비리를 고발해 해고된 정모 씨 해고 관련 행정소송의 재판장을 맡아 원고 패소 판결로 LG의 손을 들어줬다. 그는 2009년 퇴임한 뒤 이번에는 정 씨가 LG전자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 민사소송에서 LG 측 변호를 맡았다. 정 씨는 부당한 사건 수임이라며 지난해 고 전 대법관을 고소했지만 서울중앙지검은 무혐의 처분으로 끝냈다.

이대로 묻힐 뻔했던 고 전 대법관의 처신은 작년 말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변협에 징계를 청구하면서 알려졌다. ‘황제 노역’ 사건으로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추락한 상황에 그나마 서울변호사회의 자정(自淨) 기능이 작동해 다행스럽다. 서울고검도 최근 고 전 대법관의 변호사법 위반 사건 재수사에 나섰다. 과거 서울중앙지검이 무혐의 처분했을 때도 로펌의 로비가 있었는지 따져볼 일이다.

변협은 고 전 대법관과 유사한 사례에 징계 처분을 내린 일이 있다. 대법원의 명예까지 떨어뜨린 사람에게 대법관을 지냈다고 봐주기식 ‘전관예우(前官禮遇)’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징계위원에게 로비를 하는 것은 사건을 심리 중인 판사에게 청탁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학연 지연에 사법시험 기수까지 따져 로비하는 법조계의 비정상적 관행을 끊지 못하면 국민의 불신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법치주의의 마지막 보루가 돼야 할 사법부가 오히려 불신 사회를 부추겼던 불과 두 달 전의 ‘황제 노역’ 사건을 벌써 잊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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