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용석]창조경제 대통령의 2%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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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소비자경제부 차장
김용석 소비자경제부 차장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삼성전자 사이에 벌어진 셀피(셀카사진) 사건이 화제다. 백악관을 방문한 미국프로야구(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의 데이비드 오티즈가 오바마 대통령과 찍은 셀피를 트위터에 공개한 것이 발단.

삼성이 이 사진을 리트윗해 갤럭시노트3 홍보에 활용하면서 문제가 커졌다. 오티즈가 삼성의 후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백악관은 분개했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포츠인 자격으로 오바마 대통령의 옆자리를 내어줬건만, 기업의 후원을 받는 광고 모델로 돌변하다니. 백악관이 법적 대응을 시사하면서 삼성이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삼성이 간과한 것은 대통령의 옆자리가 공공영역이라는 점이다. 대중에 노출되는 최고 권력자의 옆자리는 아무에게나 허용되지 않는다.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규범과 가치에 대한 합의가 전제됐을 때 비로소 허락된다. 주목도가 클뿐더러 그 자리 자체가 권력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옆자리는 항상 치열하다. 정치 암투를 다룬 미국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에선 권력에서 소외된 부통령이 교육법안 서명식 때 대통령 옆에 서기 위해 어린 학생의 자리를 슬그머니 빼앗는 장면이 나온다.

과거 대통령 선거에서 허경영 씨가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나란히 서서 찍었다는 의문의 사진이 뜨거운 화제가 된 걸 보면 우리도 대통령 옆자리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대통령까진 아니어도 유명 정치인들이 참석하는 신년 하례회 행사에선 개인 전용 사진사를 대동하고 ‘인증사진’ 찍기에 열중인 사람이 눈에 띈다. 그럴싸한 액자에 끼워 집무실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놓을 이런 사진들은 권력에 기대는 비즈니스 현장에서 일종의 통행증이나 자격증 같은 역할을 한다.

작년 이맘때쯤 이스라엘 텔아비브를 방문해 창조경제를 주제로 취재한 적이 있다. 창조적이라기보다는 천재적 장사꾼인 이스라엘 기업인들은 ‘창조경제에 대한 조언 한마디 해 달라’는 요청에 “대통령이 사진 많이 찍으시라”는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맨바닥에 선 무명(無名) 창업가들에게 대통령과 찍은 사진은 아주 좋은 도약대가 된다. 국가적으로도 창업을 장려하는 훌륭한 메시지가 될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는 주머니에서 아이폰을 꺼내 시몬 페레스 대통령과 찍은 사진 여러 장을 보여주며 자랑했다. “언제든 대통령과 전화가 연결된다”는 말이 허풍으로만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옆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지난해 6월부터 올 3월 중순까지 동아일보 지면에 실린 대통령 사진 중 다른 인물과 함께 나온 192장을 분석해봤다. 가장 많은 84장(43.7%)이 다른 나라의 정상이나 정부의 안보라인과 함께 찍힌 사진이었다. 국내 정치인과 함께 나온 사진은 9장(4.6%)에 그쳤다.

경제인과 함께 찍은 사진은 33장(17.1%)으로 두 번째로 많았다. 하지만 누구나 이름을 알 만한 대기업 총수나 외국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빼고 무명의 청년 창업가나 기업인과 찍은 사진을 찾아보니 4장(2.0%)에 불과했다. 옆자리 인물만으로 풀이해 본다면 박 대통령은 43.7% 외교안보 대통령이고, 17.1% 경제 대통령이었지만, 2.0%만 창조경제 대통령이었던 셈이다.

물론 사진이 전부를 말해주진 않는다. 대통령 옆자리를 청년 창업가에게 내어준다고 무조건 창조경제가 실현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정부가 관심을 끊어줘야 창조가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정보기술(IT) 전문가들의 숙원 과제였던 액티브엑스 폐지가 대통령 간담회 한 번으로 단칼에 해결되는 한국의 현실을 감안했을 때 대통령의 옆자리를 좀 더 내어주는 일이 꺼져가는 창조경제의 에너지를 되살리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김용석 소비자경제부 차장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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