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승건]삼성…스포츠…1등주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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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1876년 최초의 전화 발명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1969년 인류 최초의 달 착륙 닐 암스트롱. 역사는 1등만을 기억합니다.”

1995년 초가을부터 TV에 등장한 삼성그룹의 기업PR 광고는 당시 큰 화제가 됐다. 엄청난 물량공세 덕분에 인지도도 높았지만 ‘1등주의’에 대한 거센 논쟁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이 광고를 보고 1등이 되기 어려운 많은 ‘보통 사람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 십수 년이 흐른 최근까지 한 개그맨의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유행어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사실 그때만 해도 삼성그룹은 재계 서열 2위였다. 지금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삼성전자가 단일 기업 매출액 톱5에 들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어쨌든 그해 11월. 삼성그룹의 계열사인 삼성화재가 배구단을 만들었다. 선수로서는 크게 빛을 보지 못했던 신치용 감독을 사령탑에 앉힌 뒤 전폭적인 지원을 했다. 이후 삼성화재의 행보는 놀라웠다. 실업 시절을 포함해 17차례의 겨울리그에서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챔피언결정전에 올랐고 15번이나 우승했다. ‘프로 팀 감독은 파리 목숨’이라는 현실에서 신 감독은 20년째 같은 자리에 앉아 있다. 국내 프로 스포츠 사상 단일 팀 최장수 감독이다. 공교롭게도 ‘1등만 기억한다’는 슬로건을 내건 직후 창단한 배구단이 삼성의 ‘1등주의’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신 감독은 올해 초 체육인으로는 최초로 ‘자랑스러운 삼성인상’을 수상했다. 배구뿐 아니라 삼성 야구도 최근 1등주의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해 프로야구 최초로 3년 연속 통합 우승을 달성하는 등 최근 9년 동안 5차례나 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 뜻대로만 되랴. 배구와 함께 겨울 종목의 양대 산맥인 농구에서 삼성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11∼2012시즌에는 1997년 프로농구 출범 이후 처음으로 최하위의 수모를 당했고 올 시즌에도 10개 팀 중 8위에 그쳤다. 우승은 2005∼2006시즌이 마지막이다. 스포츠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삼성이 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는 얘기가 나온다. 한술 더 떠 “모든 종목에서 우승하면 욕을 먹으니 일부러 놔두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들린다. 농구단이라고 우승에 대한 열망이 없으랴. 그만큼 프로 스포츠에서 1등이 쉽지 않다는 방증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스포츠는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고 패자는 한없이 초라해지는 가장 대표적인 분야다.

프로배구 8번째 우승이자 7연패에 도전하는 삼성화재가 오늘 현대캐피탈과 챔피언결정전(5전 3승제)을 시작한다. 삼성이 4연패를 노리는 프로야구는 내일 대장정의 막을 올린다. 삼성 팬이 아니라면 삼성 배구와 삼성 야구가 쳐다보기도 싫겠지만 정상을 지키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걸 배우고 넘어야 1등이 된다.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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