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54>그들에게 선물이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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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이 커피전문점에서 남자친구에게 불만을 늘어놓는다. 발단은 화이트데이 선물. “달랑 선물 하나가 뭐냐”며 실망이 컸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선물이란, 받아서 기쁜 물건 외에 좋은 식당의 맛있는 음식과 근사한 분위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합쳐놓은 일종의 패키지와도 같다.

남자는 변명을 하다가 억울했는지 손익계산을 따진다. 늘 ‘비싼 선물’을 사주고, 자기 차례에는 ‘정성’을 선물 받았던 게 억울하다. 선물이 남자 능력의 상징이라지만, 왜 일방통행이어야만 하는지는 납득이 안 된다. 양성평등의 시대에.

형돈이와 대준이의 노래 ‘되냐 안되냐’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이런 가사가 나온다. ‘2월 14일도 니가 받고 3월 14일도 니가 받고/내 생일 때도 니가 받고 1년 내내 니가 선물 받고….’ 정도 차이는 있지만 대개 그렇게들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많은 미혼 남성이 결혼을 벼른다. ‘잡은 고기’가 되면 먹이(선물)를 줄 필요가 없을 것이란 계산이다. 그러나 여성들의 ‘선물 선망’은 결혼 후에도 면면히 이어진다. 대표적인 선물 독촉 이벤트가 결혼기념일이다. “결혼생활, 혼자 했냐”고 따져봐야 소용없다.

그들은 왜 응당히 선물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늘 신경을 써주며 마음을 희생하는 대가로서의 선물을 기대하는 것일 수 있다. 마음 씀씀이에 대한 고마움을 물건으로 보답해 달라는 요구인 셈이다. 그들은 선물 받은 예쁜 물건을 자신의 상징물로 여기며 기쁨을 누린다.

변함없는 사랑을 증명해 보이라는 요구일 수도 있다. 여성은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늘 궁금해하며 시시때때로 알아보려는 경향이 있다. 따뜻한 관심을 받고 있다는 느낌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확인하며, ‘사랑의 증표’를 통해 그런 느낌을 간직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철학자 자크 라캉의 ‘사랑하는 자는 결핍이 있는 자’라는 관점으로 보면, 여성은 자신의 원인 모를 결핍감을 채우기 위해 한없는 사랑을 원한다. 그래서 아무리 많은 마음과 증표를 받아도 계속 새로운 것을 바라게 된다. 1년 내내 선물을 받아야 하는 이유다.

여성은 이래저래 선물과 떼어놓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다. 사귀는 남자가 없는 여성에게도 선물은 중요한 사랑의 증표다. 그들만의 선물 방식이 있다. ‘나를 위한 선물.’

이에 착안해 남편이 아내에게 선물 감동을 안겨준 뒤에 묻는다. “나를 위한 선물로 카메라 렌즈 하나만 사도 돼?” 단호한 대답이 온다. “안 돼.” 남편의 관심을 그런 것과 나누는 게 싫은 것이다. 여성에게 선물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입증하는 매우 중요하고 배타적인 상징물이다.

한상복 작가
#선물#물건#사랑#증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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