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종수]사회를 받쳐주는 기둥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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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 연세대 교수·행정학
이종수 연세대 교수·행정학
봄이 오는데, 봄을 맞는 꿈을 꿀 수가 없다. 아침에 눈을 뜨면 조간은 우울한 소식으로 가득하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은 내란을 음모하다 실형을 선고받고, 보수 성향의 국가정보원은 간첩 혐의를 조작하다 적발되었다. 그 사이 생활고에 시달리던 세 모녀가 마지막 집세만 남겨두고 자살했다.

어이없는 일들이고 안타까운 사건들이다. 나라의 어느 곳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데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차는 사람도 있다. 사회는 사회대로 각박하기 짝이 없는 곳으로 거칠어져 가고, 정부는 정부대로 기둥이 흔들린다. 우리가, 인정 없는 사회를 만들어온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9년 연속 자살률 1위 국가로 분류한 사실 하나만으로 그 증거는 충분하다. 사회는 그렇다 치더라도, 정부기관의 거짓과 조작은 또 다른 차원의 엄중성으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국가기관이 국민을 속이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수준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온 줄 알았는데, 이번 사건으로 옛날의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된다.

창조경제도 중요하고, 규제개혁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사회의 근간을 바르게 하는 일이 우선이다. 국가기관이 공공성(公共性)을 존중하고 그것을 준행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것이 흔들리면 사회가 흔들리고 여기저기 파열음이 날 수밖에 없다. 왕조시대에는 왕에게만 충성하면 되었고 왕의 첩의 침대도 그냥 공공성의 영역으로 보호됐다. 근대에는 국가가 공공성을 독점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공권력이라고 해서 무조건 공공성을 부여받는 게 아니라, 민주적 가치와 국민적 지지에 부합할 때만 공공성을 인정받을 수 있으며 존립의 의미를 갖는다.

국가기관의 공공성 다음으로 사회를 받쳐주는 기둥이 되는 건 국민의 선의지(善意志)다. 사회 구성원들의 선의지에 일찍 주목한 사람은 칸트였다. 어떤 행동이 나에게 유리하거나 혹은 나의 성향에 맞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옳기 때문에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지가 사회의 토대를 이룬다는 원리를 주목했다. 칸트는 절대적이고 그 자체로 온전한 선의지를 얘기하지만, 순화해서 살펴보면 인간의 도리를 준행하는 사람들을 향해 건강한 사회는 열려 있다는 이야기다.

동양의 맹자는 구성원들의 예(禮)를 사회의 기둥으로 봤다. 맹자에게 예란 인간의 본성에 근거한 행동양식이다. 아무리 인간이 이익을 따라 움직이고 잔혹하게 보여도, 사단(四端) 즉 인간의 내면에 깃들어 있는 희망의 씨앗에 의해 사회가 성립하고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것을 통해 인간이 자신의 본성을 확충하며 사회를 바르게 가꾸어 갈 수 있다고 맹자는 갈파한다.

아름다움을 꿈꾸는 시인에게는 사회를 받쳐주는 힘이 꽃이었나 보다. 정현종 시인은 ‘꽃들의 부력’에서 “진달래, 벚꽃 핀 하늘에/새가 선회하며 난다/꽃 때문인 듯 저 비상(飛翔)은/꽃들의 부력(浮力)으로 떠서 … 미풍이나 거기 들어 있는 온기도/꽃에서 시작되는 것이었다!”고 고백한다. 꽃의 부력으로 새가 날고, 그 향기와 아름다움으로 사회가 유지되는 거라고 시인은 믿는다.

이 순서대로일 듯하다. 우리 사회의 흔들리는 기둥 가운데 가장 먼저 바로잡을 것은 국가기관의 공공성이다. 국정원의 공공성 훼손은 검찰총장의 혼외자 문제나 스캔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엄중한 문제다. 국정원 스스로야 증거조작 문제를 단순한 서류 문제로 규정하고 실무자를 처벌하는 데 그치려 하겠지만 조직과 문화를 근본적으로 혁신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음지에서 헌신하는 자신들의 노력도 떳떳하게 인정받을 수 있다.

그 바탕 위에서 우리는 어떻게 선의지와 예를 머금고 좀 더 인정 있는 공동체를 가꾸어 갈 수 있을지를 성찰해야 한다. 그러면 ‘꽃들의 부력’으로 새가 나는 봄도 꿈꿀 수 있게 될 거라 믿는다.

이종수 연세대 교수·행정학
#선의지#공공성#국정원#증거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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