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박근혜 정부에서도 권력기관 출신이 장악한 사외이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0일 03시 00분


대기업들이 올해에도 청와대 검찰 국세청 감사원 등 권력기관에서 고위직으로 근무했던 인사들을 사외이사로 대거 영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대기아차그룹 계열의 현대건설은 이명박 정부 때 감사원 감사위원을 지낸 검찰 출신 박성득 씨를 14일 사외이사로 선임한다. 현대로템도 하복동 전 감사위원을 사외이사로 내정했다. 현대차는 오세빈 전 서울고등법원장을, 기아차는 홍현국 전 대구지방국세청장을 재선임한다. 삼성 SK LG 등 다른 대기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10대 그룹 상장회사 93개사가 이달 주주총회에서 선임하는 사외이사 126명 가운데 권력기관 출신은 46명이다. 10명 가운데 4명이 권력기관 출신인 셈이다. 대기업이 힘 있는 기관에서 일했던 인사를 사외이사로 끌어들인 뒤 그들의 출신 기관을 상대하는 방패막이로 삼는 행태는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좀처럼 달라질 기미가 없다.

사외이사 제도는 대주주와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을 이사회에 참여시켜 대주주의 전횡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기업의 지배구조를 선진화하려고 이 제도를 만들었지만 15년이 넘도록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외이사 자리는 ‘권력기관과 대선 캠프 출신의 안식처’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는 판이다.

이들과는 별도로 대학 교수들이 “사외이사를 시켜 주면 대주주가 원하는 대로 해 주겠다”며 회사 측에 역(逆)제안을 하기도 한다는 소식이다. 대주주가 기업어음(CP)을 남발해 투자자들에게 큰 손해를 끼쳤던 동양그룹의 사례에서도 사외이사가 기업 내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거수기 노릇에 그치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사외이사의 업무는 한 달에 한 번쯤 회의에 참가하는 정도이지만 연봉이 대개 수천만 원에 이른다. 연봉 1억 원이 넘는 사외이사 자리도 여러 곳 있다. 이러다 보니 해마다 주주총회 시즌만 되면 사외이사 희망자들이 정치권을 상대로 낙하산 사외이사를 시켜달라고 로비를 벌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사외이사를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나 권력기관 상대의 로비스트로 바라보는 대기업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사외이사를 둘러싼 ‘비정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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