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병준]너무 일찍 피었다 지는 스포츠인들에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3일 03시 00분


코멘트
김병준 인하대 교수 스포츠심리학
김병준 인하대 교수 스포츠심리학
소치 겨울올림픽의 여운이 사라지고 있다. ‘빅토르 안(안현수)의 화려한 부활’은 단연 화제였다. 만약 대한민국에서 운동선수의 은퇴 후 진로가 다양했더라면 안 선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올림픽의 기억이 완전히 잊혀지기 전에 냉정하게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다.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일약 주목을 받지만 어김없이 은퇴는 찾아온다. 선수의 진로와 은퇴는 보통 사람의 그것과 아주 다르다. 선수는 이르면 20대 말에서 30대 초반에 은퇴한다. 50, 60대에 은퇴하는 일반 직장인과 대조적이다. 그러니 은퇴 후 대책이 있을 리가 없다. 다른 분야에 적응해 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세계 최고 수준인 주당 30∼50시간의 훈련을 소화하고 운동 경력 10년을 훌쩍 넘긴 우리의 엘리트 선수들은 그 분야의 전문가라 할 만하다. 하지만 그에 걸맞은 진로 대책은 부족하다.

일본이나 미국의 선수는 학업과 운동을 병행한다. 미국은 학업 성적이 좋지 않으면 선수 자격이 박탈된다. 일본에서는 시험기간에 시험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훈련을 하지 않는다. 선수 출신이라도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으로 진출하는 걸 특이하게 여기지 않는다. 꼭 운동 분야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운동에 전념한 선수가 은퇴 후에는 운동 이외의 다른 분야로 새로운 삶을 찾아 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우리의 학생 선수들은 어떤가. 시험지에 “죄송합니다. 운동하느라 공부를 제대로 못했습니다. 다음에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적을 수밖에 없다.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기 힘들다. 운동을 떠나면 물고기가 물 밖으로 나온 것과 같다. 소속팀에서 나갈 수밖에 없었던 한 엘리트 선수는 “운동을 못했던 시간이 너무나 무서웠다”고 고백했다. 운동을 제외하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그다지 넓지 않다. 선수는 친구도 선수이고 선배나 선배의 친구도 선수일 정도다.

은퇴한 선수들은 “하루아침에 바깥 세상에 내동댕이쳐졌다”라고 말한다. 그러니 어느 날 갑자기 운동을 못하게 된다는 것만큼 두려운 일은 없다. 엘리트 스포츠는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 하지만 그 주역들은 어느 날 바깥 세상에 내동댕이쳐진다. 안타까운 일이다.

스포츠는 글로벌 언어다. 아프리카 국가가 겨울올림픽에 참가할 만큼 소통의 폭도 넓다. 이제 우리도 글로벌 관점에서 선수의 진로를 바라봐야 할 때가 됐다.

안현수는 이런 점에서 새로운 모델을 용기 있게 선택했다. 그도 바깥 세상에 내동댕이쳐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엘리트 스포츠에서 수용범위가 초과되면 외국으로 진로를 개척하게 해야 한다. 그들은 스포츠라는 글로벌 언어 구사 능력이 뛰어나다. 외국으로 가더라도 신속하게 적응한다. 선수로 활약하다 지도자가 되는 것도 수월한 편이다.

태권도 지도자는 세계 곳곳에서 도장을 경영한다. 양궁 국제 대회는 한국인 지도자들의 경쟁 장소가 됐다. 이제 외부의 여건에 의해서가 아니라 선수와 선수 가족이 적극적으로 해외 진로를 모색할 때이다. 선수와 스포츠 지도자는 전문 인재로 ‘수출’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다.

선수에게 운동에만 몰두하도록 강요한 것은 기성세대였다. 엘리트 스포츠 강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운동을 그만두는 엘리트 선수가 나올 수 있지만 이들은 다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 대신 운동 능력이라는 글로벌 언어를 갖고 있다. 이 장점을 키우게 해야 한다. 최고 정점에서 어느 날 갑자기 아무것도 준비 안 된 상태로 바깥 세상으로 쫓겨나게 해서는 안 되겠다. 오히려 ‘제2, 제3의 안현수’가 나올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김병준 인하대 교수 스포츠심리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