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남북의 해빙을 갈구하는 혈육의 뜨거운 눈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1일 03시 00분


폭설이 쌓인 금강산에서 마침내 만난 남북의 이산가족들은 서로를 껴안고, 얼굴을 비비며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깊게 파인 주름살 너머로 헤어질 때 혈육의 옛 모습이 어렴풋했다. “아버지….” “미안하고 고맙다. 이렇게 살아줘서….” 기구한 생이별 끝에 재회한 가족은 감격과 회한에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6·25 때 헤어진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1970년대 납북된 형제를 만난 케이스도 있었다. 3년 4개월 만에 재개된 이산가족 상봉을 TV로 지켜본 국민도 같이 울었다.

금강산호텔에서 북측 가족들과 단체상봉을 한 남측 82명 중엔 90세 이상이 25명, 80세 이상이 42명으로 거동이 어려운 분들이 적지 않았다. 심한 감기로 쓰러진 김섬경 할아버지(91)는 “죽더라도 금강산에서 죽겠다”며 이동식 침대에 누운 채 먼 길을 실려와 북한의 딸 아들을 만났다. 척추 골절 수술을 받은 홍신자 할머니(84)는 결국 구급차 안에서 여동생과 조카를 만나야 했다. 헤어져 산 세월만큼 애틋함도 컸다. “오빠 만난다고 신발이랑 내의 다 장군님께서 마련해 주셨다” “금강산(관광)이 잘돼야 한다”라고 주변이 다 듣도록 큰소리로 말하는 마른 얼굴이 더 가슴 아팠다.

이번에 상봉한 이산가족들은 그나마 세상을 뜨기 전 피붙이를 만나 한을 풀 수 있었다. 정부에 등록된 상봉 신청자 중 생존자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7만1480명이다. 연령대별로 90대가 7950명(11.1%), 80대가 2만9819명(41.7%), 70대가 2만477명(28.7%)이다. 한국의 평균 기대수명이 81세(2012년 기준)인 점을 감안하면 70세 이상은 10년간 매년 6000명 이상 상봉해야 혈육을 만나보고 눈을 감을 수 있다. 이산가족 상봉을 정례화하되 고령자에게 우선권을 주고, 화상(畵像)상봉을 재개하는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생사 확인과 서신 교환부터 서둘러야 할 것이다.

북한은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한미 연합군사연습 키리졸브와 연계하며 애를 태우다 우리의 요구를 수용했다. 북측이 “통 크게 양보했다”고 한 만큼 대가를 원할 수도 있다. 이번 상봉행사가 잘 마무리되면 지난 몇 년 동안 동결됐던 남북교류를 재개할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핵 등 안보위협이 여전하지만 북한이 진정으로 달라진다면 인도적 분야를 중심으로 차츰 남북관계의 물꼬를 틀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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