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국 정치, 신흥국 위기 보면서도 경제 발목 잡을 텐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7일 03시 00분


신흥 경제국들의 통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세계 경제에 경보음이 울렸다. 아르헨티나 페소화 가치는 23일(이하 현지 시간) 11.7% 폭락한 데 이어 24일에도 1.5% 하락했다. 터키 리라, 러시아 루블, 인도 루피, 브라질 헤알화 가치도 급락했다. 이 여파로 24일 미국과 유럽 주가는 크게 떨어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현 사태는 1997년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을 차례로 무너뜨리고 한국에도 큰 후폭풍을 남긴 아시아 외환위기 때와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신흥국들은 그동안 미국의 양적 완화 조치로 달러가 유입되면서 자산 가치가 높아졌다. 중국 경제의 호황으로 신흥국 가운데 자원 부국(富國)들의 원자재 수출도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출구 전략에 따른 글로벌 금리 인상으로 신흥국에서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간 데다 중국 경제의 경착륙 우려라는 악재가 겹쳤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이달 말 양적 완화 규모를 더 축소하면 신흥국으로부터 자금 이탈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주요 2개국(G2)인 미국과 중국이라는 변수 이외에 신흥국들의 취약한 경제 및 정치 구조도 위기를 부채질했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고질적인 퍼주기식 포퓰리즘과 외국인이 투자한 정유업체의 국유화 같은 반(反)시장 정책이 경제 위축을 초래해 2001년 디폴트(채무불이행) 선언 이후 13년 만에 다시 국가부도 위기를 맞았다. 러시아와 브라질은 원유 등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는 ‘천수답 경제’, 태국과 터키는 만성적인 정치 불안, 인도네시아는 취약한 제조업 경쟁력으로 어려움이 커졌다. 이들 신흥국에는 대부분 경상수지 적자와 재정 악화, 외환보유액 부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영국의 시장 조사업체인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신흥국을 위기에 취약한 정도에 따라 5개 그룹으로 나누었다. 한국은 필리핀 멕시코 등과 함께 ‘상대적으로 가장 안전한 국가’로 분류됐다. 한국은 소규모 개방경제체제 특성상 해외발(發) 변수에 민감하지만 현재 무역수지와 경상수지 흑자, 외환보유액이 많아 다른 신흥국들보다는 경제 체질이 덜 위험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그래도 낙관은 금물이다. 정부는 예상할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를 짜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포퓰리즘과 반시장 정책으로 위기를 키운 아르헨티나와, 정치 불안이 경제 위기를 부채질하는 태국과 터키의 현실은 우리에게도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한국의 정치는 경제 성장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는커녕 발목만 잡기 일쑤다. 정치권의 퇴행적이고 고질적인 병폐가 사라지지 않으면 우리 경제도 언제든 심각한 위기로 치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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