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서정보]너무 관대한 형량?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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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보 사회부 차장
서정보 사회부 차장
최근 언론의 관심을 끈 두 가지 판결이 있었다.

원자력발전소 부품의 납품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17억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한국수력원자력 간부에게 법원이 징역 15년을 선고한 판결과 PC방에서 게임을 하느라 생후 15개월 된 아기를 추운 베란다에 밤새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유기 치사)로 부모에게 각각 징역 2년 6개월과 2년을 내린 판결이다.

한수원 간부의 뇌물 수수 판결은 검찰 구형량 8년보다 7년이나 높은 법정 최고형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수억 원의 뇌물 사건이 징역 4∼5년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던 것에 비하면 이번 뇌물 수수 판결은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에 대한 법원의 엄벌 의지를 보여 준 것이어서 고개를 끄덕인 사람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아기를 방치해 숨지게 한 부모에 대한 판결은 1심(1년 6개월)보다 형량이 높아졌다는 점이 관심의 포인트였다. 부모가 형량이 무겁다고 항소했는데 오히려 형량을 높인 것은 부모의 방치가 용인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지난해 4월 초 오후 10시 반경 아기에게 민소매 상의와 기저귀만 입힌 채 창문 열린 베란다에 뉘어 놓고는 무려 20시간 가까이 방치해 저체온증으로 숨지게 했다.

둘 다 이례적인 판결이었지만 그 결과를 비교해 보면 ‘이게 맞는 건가’라는 의문이 떠나지 않는다. 아기를 죽음에 이르게 한 죄가 돈 받은 죄의 7분의 1 안팎의 적은 형량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다.

물론 사건 자체가 완전히 다르고, 행위에 고의가 있었느냐와 반성의 정도가 형량에 반영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형량만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그래도 사람의 목숨 값이 돈값에 비해 너무 헐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렇게 비교해 보면 어떨까. 8세 의붓아들을 베란다에 감금하고 폭행해 사망하게 한 혐의(학대 치사)로 계모인 중국동포 권모 씨(33)에게는 최근 징역 8년이 내려졌다. 권 씨는 지난해 8월 22일 서울 은평구 집에서 아이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베란다에 하루 종일 세워 놓고 플라스틱 안마기와 골프채 등으로 온몸을 마구 때린 혐의를 받았다.

이 정도의 아동 학대는 사실상 반인륜적 범죄의 전형으로 꼽히는 고문에 가깝다. 아무런 방어 수단과 피난처가 없는 어린이를 무차별 폭행해 숨지게 한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용서할 수 없다. 언론에선 8년을 중형이라고 표현했지만 뇌물 수수 15년과 비교하면 그 간극은 너무 커 보인다. 원자력발전소에서 안전사고가 나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잠재적 위험이 있지만 고귀한 생명을 무자비한 폭력으로 꺾은 것 역시 그에 못지않은 중형으로 다스리는 것이 맞지 않을까.

다음 아고라에선 이 사건에 대해 학대 치사가 아닌 살인죄로 처벌해 달라는 청원에 7만5000여 명이 서명한 상태다.

울산에서는 8세 의붓딸을 상습적으로 폭행해 숨지게 한 계모에게 당초 학대 치사 혐의가 적용됐다가 다리를 부러뜨리고 뜨거운 물을 붓는 등 계모의 잔인한 학대 수법이 속속 드러나자 검찰이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그 배경에는 학대 치사의 기존 형량이 상식적 시민들의 분노를 잠재울 수 없다는 판단도 한몫했을 것이다.

지난해 12월 31일 아동 학대 범죄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생겨 학대 치사의 경우 무기징역까지 내릴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20일 일반적인 아동 학대 치사죄의 양형기준을 기본 4∼7년, 가중하면 6∼9년으로 정했다.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역시 미진하다고 느낀다면 지나친 것일까.

서정보 사회부 차장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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