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마오쩌둥의 功過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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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월 중국의 변호사 장훙빙(60)은 언론을 통해 “내가 어머니를 죽였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 1970년 그는 17세의 홍위병이었다. 어느 날 그의 어머니는 정부가 나눠준 ‘보건수첩’에 실린 마오쩌둥의 훈시를 보며 “다른 사람이 했던 말을 베낀 것”이라고 무심코 말했다. 그는 격분해 “마오쩌둥을 모욕했다”며 고발했고 어머니는 총살됐다. 세월이 흐르면서 드러나는 문화대혁명(문혁) 때의 증언이다.

▷어제는 중국 공산당 지도자 마오쩌둥의 탄생 120년이 되는 날이었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그의 업적을 다룬 기사를 다투어 내보냈다. ‘새로운 중국을 만든 영웅’이라는 시각이다. 그러나 그가 피해갈 수 없는 과오가 두 가지 있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이어진 문혁과 1950년대 말의 대약진운동이다. 문혁 때 마오쩌둥은 “자본주의를 청산한다”며 수많은 홍위병을 앞세워 지식인과 과거 자본가 계층을 탄압했다. 문화 유적이 파괴됐고 대학은 4년간 문을 닫았다. 사망자는 100만 명에 달했다.

▷중국의 비극은 한국에는 기회로 작용했다. 1960년대 서구 국가들은 국내 임금이 급상승하자 해외에서 싼 노동력으로 제품을 생산하려 했다. 하지만 남미는 종속이론에 빠져 등을 돌리고 있었고, 아프리카와 인도는 후진성으로 생산 능력이 없었다. 이념 전쟁에 휩싸였던 중국도 제외됐다. 서구 국가는 한국 대만 등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 유리한 흐름 속에서 박정희 리더십을 바탕으로 수출에 매진해 급속한 성장을 이뤄냈다.

▷과거 중국 내에서 마오쩌둥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 반응과 부정적 반응이 각각 7 대 3 정도로 나타났지만 최근 조사에선 “존경한다”는 반응이 91%까지 올라갔다. 1981년 중국 공산당은 문혁에 대해 ‘엄청난 재난을 초래했던 내란’이라는 입장을 내놨으나 아직까지 국가 차원의 실태 조사는 없었다. 중국은 과오를 외면하는 것일까, 아니면 드러내놓고 말하길 꺼리는 것일까. 인류는 문혁 같은 집단적 광기가 세상에 다시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자신할 수 있는가. 마오쩌둥 탄생일에 드는 의문이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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