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남성욱]소리 없는 전쟁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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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욱 고려대 교수·북한학
남성욱 고려대 교수·북한학
인류 역사는 정보 수집의 역사다. 현대에 들어 로웬설(Lowenthal), 허먼(Herman) 등 정보학 분야의 저명학자들은 정보(Intelligence)를 국가안보와 국제관계 등에 대한 비밀을 파악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정보학 이론가인 슐스키(Shulsky)는 그의 저서 ‘소리 없는 전쟁(Silent Warfare)’에서 정보는 상대방이 숨기고자 하는 첩보자료에 접근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보란 타인의 비밀을 비공개로 수집하는 것, 즉 비밀성을 내포한다. 비밀 수집 활동을 위해 각국 정보기관은 형식적으로는 헌법 등 기본 6법을 준수하지만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부득이하게 가칭 ‘필요법’이라는 제7법을 적용한다. 전직 미국 중앙정보국(CIA) 직원 스노든이 폭로한 도·감청은 비밀정보 활동의 대표적인 사례이며 무덤까지 간직할 비공개 사안은 수없이 많다.

최근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정보기관의 각종 공개성 논란은 진정한 개혁이기보다는 활동 불능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선 야당은 △국회 정보위 요구 시 시설·장비·문서 등 공개 △정보위 회의 공개 원칙 △정보기관의 자료 제출 거부권 제한 △국회의 기관원 증언 요구 시 기관장의 협력 의무 신설 등을 요구하고 있다. 정보기관의 권력남용 방지를 위한 국회의 통제 강화 필요성을 명분으로 내세워 사실상 국가기밀을 제한 없이 열람하겠다는 입장이다. 결국 정보기관을 발가벗겨 일반 행정부처와 동일하게 관리한다는 복안이다. 이미 정보위원의 비밀접근이 상당 수준 허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또다시 무제한적 비밀열람권을 추진하는 것은 입법권을 앞세운 정치권의 월권이다.

한편 정보활동의 비밀성에 관한 여타 사례는 ‘돈’ 문제다. 국회가 정보기관 활동을 통제하기 위해 예산 내용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먼저 국가정보원이 예산을 기획재정부 예비비나 타 부문 정보기관 특수 활동비에 은닉하지 못하도록 국정원법 제12조를 폐지하고 예산특례법도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보예산 보호는 국가안보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필수장치다. 정보예산 노출 시 정보기관 조직, 인력 규모, 국가 정보활동의 방향과 수단이 드러나 결국 첩보망 상실과 대공수사 실패 등 정보기관의 무력화는 물론이고 국가 간 외교마찰까지 야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대부분 선진국도 국가안보 차원에서 △정보예산 비공개 △총액 배정 △별도기구 심사 △예결위 총액 심사 등 예외를 인정하며 특례조항으로 보호한다.

작금에 야당이 주장하는 대로 ‘예산특례법 폐지, 예결위 심사자료 제출’ 등 통제가 강화된다면 우리 스스로 무장해제를 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국정원에 편의·특혜를 제공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정보기관 역량을 나타내는 예산 규모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는 장치다. 대다수 외국 정보기관도 타 부처에 포함되어 비공개다. 미국 CIA는 국방부, 독일 헌법보호청·연방정보부는 총리실, 이스라엘 모사드는 국방부, 중국 국가안전부는 국방부 등이 그 사례다.

결국 일부 정치권의 정보기관의 근간을 흔드는 공세는 댓글 사건에 대한 일종의 정치적 보복행위다. 이미 해당 기관장이 사법적 처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기관의 무차별적인 공개 시도는 자제되어야 한다. 최근 장성택 처형 등으로 한반도 정세가 격랑 속으로 내몰리는 상황이다. 향후 정보 수요는 급증할 것이다. 국회가 정보기관 활동의 최소한의 여건은 마련해주고 성과를 기대해야 한다. 정보기관을 국회가 통제한다는 원칙은 준수되어야 하지만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해선 안 된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북한학
#정보 수집#비공개#비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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