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양준모]무분별한 의원입법 막아야 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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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모 연세대 정경대 교수
양준모 연세대 정경대 교수
우리는 규제 공화국에 살고 있다. 규제의 필요성이 의심되거나 부작용이 우려되는 규제가 주변에 너무 많다. 규제개혁위원회에 따르면 현재까지 등록된 규제의 수는 1만5066개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그동안 정부의 과도한 규제가 효율적 자원 배분을 저해하고 민간의 창의를 억제함으로써 국가경쟁력을 낮추고 있다는 비판이 많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199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규제개혁을 실시하였으나 규제가 줄어들기는커녕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규제는 법령과 그에 따른 고시 등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규제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법을 제대로 만들 필요가 있다. 19대 국회가 출범하여 지금까지 국회에 접수된 법률안은 8172개로 이 중 의원들이 발의한 법률안은 7670개다. 이를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의원 1인당 약 26개의 법률안이 제출되었으며, 법률안 한 개를 만드는 데 소요된 기간은 21일 정도임을 알 수 있다. 소설도 쓰기 힘든 기간에 법률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했다는 이야기이다.

의원들이 법률안을 제출하는 과정은 매우 간단하다. 의원들의 입법을 지원하기 위해 국회사무처에 법제실이 있으나 의원들이 법제실을 이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의원의 판단에 달려 있다. 법안 비용의 추계와 전문위원의 검토 의견서가 첨부되지만 의원들이 제출한 법률안이 의결될 때까지 법률안이 향후 야기할 수 있는 충격에 대해서는 체계적으로 검토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다양한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우선 설익은 법률안들이 우후죽순처럼 제출되고 있다. 의원들이 발의한 법률안이 가결되는 비율은 절대적으로 낮다. 18대 국회에서는 의원들이 1만2220개의 법률안을 제출하였으나, 이 중 가결된 법률안의 비율은 13.6%에 불과하고 나머지 86.4%는 폐기되거나 철회되었다. 19대 국회도 예외는 아니다. 조금 더 세심하게 검토하여 법률안을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더욱이 의원들이 발의하는 법률안이 대체로 규제 일변도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의하면 18대 국회의 의원 발의안 중 규제 신설·강화 법안 비중이 17.8%로 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법안의 비중(10.4%)보다 훨씬 높았다. 의원들이 정부보다 규제를 신설하거나 강화하는 법안을 더 많이 제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법 과정에서 시행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검토하는 절차가 없다.

국회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등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기관이다. 입법권은 이러한 헌법적 가치를 우리 생활에서 구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따라서 제출된 법률안이 이러한 목적에 부합하는가를 평가하고 통제해야 한다. 규제는 그 자체로 위헌적 소지가 있어 특수한 경우에만 허용돼야 하는 수단이다. 규제가 아무런 통제 절차 없이 마구잡이식으로 도입된다면 이는 국회의 입법권 남용이다. 불합리한 규제 법안이 가결되면 국민이 피해를 보고 나서야 그 문제의 심각성이 알려진다. 규제로 인해 형성된 이해관계로 규제 법안을 사후적으로 바꾸는 것은 어려워진다. 따라서 사전 통제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국회는 삼권분립 차원에서 입법권을 가지고 있다. 삼권분립 원칙은 견제와 균형을 통해서 구현되며, 견제와 균형은 자기 통제의 원칙에 기반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입법권의 남용으로 국민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국회가 앞장서서 사전적 통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회가 하루빨리 제출된 법률안이 타당성이 있는지, 그리고 자유민주적 시장질서 구현에 부합하는지를 평가하는 자기 통제 시스템을 갖추길 기대한다.

양준모 연세대 정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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