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상훈]금융한류, 진정 이루고 싶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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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경제부 기자
이상훈 경제부 기자
한 시중은행의 중국법인 지점장 A 씨는 요즘 멀쩡한 기업대출을 거둬들이면서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사정은 이렇다. 중국 금융당국은 지난해부터 모든 외국계 은행 현지법인에 예대율을 75% 이하로 맞추라고 지시했다. 예금을 100원 받으면 대출은 75원까지만 해주라는 뜻이다. 예금을 더 많이 유치하거나 대출을 줄여야 한다.

그런데 예금을 늘리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세계적으로도 명성이 높은 자국 은행을 두고 ‘이름 없는’ 한국계 은행에 돈을 맡길 현지인은 드물다. 최근에는 현지 당국으로부터 위험 대비용 ‘비상금’인 대손충당금을 배 이상 늘리라는 지시까지 받았다. 예금은 좀처럼 증가하지 않고 쌓아야 할 돈은 늘어나니 결국 대출을 회수할 수밖에 없다.

현지화 노력도 한다고 했다. 하지만 현금자동지급기(ATM) 하나 설치하는데도 허가를 받아야 하고, 신용카드 한 장 발급해줄 수 없는 처지에 적극적으로 영업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A 지점장은 “날로 늘어가는 현지 규제 때문에 점포를 철수할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 금융당국의 화두 중 하나는 해외 진출이다. 국내에서 ‘땅 짚고 헤엄치기’식 돈벌이를 그만하고 밖으로 나가라는 것이다. 27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금융 경쟁력 강화방안에도 해외 진출을 독려하는 규제완화 대책들이 대거 담겼다.

이런저런 규제를 풀면 도움이 될까. 정부는 2007년 해외 진출을 촉진하겠다며 국내 은행이 해외에서 증권사 보험사 등을 인수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실제로 IBK기업은행, KDB산업은행, 우리은행 등이 인도네시아 태국 등에서 금융사 인수를 추진했다. 실적은 전무했다. 가격 조건도 안 맞았지만 승인 절차가 까다롭고 외국인 지분 소유제한 등 현지 규제가 강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의 투자를 원하는 나라는 많아도, 외국 자본이 자국 금융회사를 인수하는 데 호의적인 나라는 드물다. 금융은 나라 경제의 운명을 좌우하는 기간산업이다. 어느 나라든 까다로운 허가 절차와 강력한 규제가 작동한다. 국내에서 작은 규제 한두 개 풀어줘 봤자 해외에 나가면 더 높은 벽이 기다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9월 응우옌떤중 베트남 총리와의 환담에서 “하나은행이 호찌민 지점 개설을 신청했는데 6년 동안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며 지원을 요청했다. 베트남 총리는 곧바로 중앙은행 총재에게 전화를 걸어 ‘민원’을 해결해줬다. 대통령이 저런 부탁까지 해야 하나 싶겠지만 정상끼리 머리를 맞대야 ‘지점 인가 문제’가 풀릴 정도로 금융의 해외 진출은 어렵고 복잡한 문제다.

진정 금융한류를 실현하려면 국내 금융사의 해외 진출을 가로막는 세계 각국의 ‘규제 장벽’에 도전해야 한다. 때로는 부드럽게 설득하고 때로는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당국이 직접 발에 땀이 나도록 뛰겠다는 각오가 없다면 금융한류는 뜬구름 잡는 구호로 전락할 것이다.

이상훈 경제부 기자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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