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북한산을 바라보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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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여 책상 앞에 앉으면 북한산이 아주 가깝게 보인다. 어떤 날에는 구름 속에 들어가 희미한 산수화로 보이기도 하고, 겨울에는 하얀 눈에 덮여 설산(雪山)의 위용을 보여주기도 한다. 마치 날마다 달라지는 내 마음처럼 그 풍경 또한 날마다 다르다. 그런데 북한산을 볼 때마다 산악인 엄홍길 대장의 일화가 생각나서 나 혼자 슬그머니 웃곤 한다.

엄홍길 대장이 상명대에 강의를 나가면서 매주 토요일에 학생들과 북한산에 오른 적이 있었다. 땀을 흘리며 북한산에 오르자 한 학생이 이상하다는 듯이 묻더라고 했다.

“교수님도 북한산에 오르는 게 힘드세요?”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비롯해 8000m 이상 16좌를 등정한 산악인이니까 837m의 북한산쯤은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물론 타고난 폐활량에다 훈련된 몸이어서 일반인처럼 힘이 들지는 않겠지만 엄홍길 대장이라고 축지법으로 올라가는 건 아니다. 누구든 정상에 오르려면 그렇듯이 한 발 한 발 땅을 밟고 올라가는 것이다.

25년쯤 전인가 보다. ‘설악산의 다람쥐’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었다. 설악산에 살면서 날마다 다람쥐처럼 산을 오르내리다 보니 기고만장했다. 산에 오르는 많은 사람들이 쩔쩔매며 자신보다 뒤처지니까 갑자기 만용을 부렸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마라톤대회에 출전을 신청한 것이다.

“험한 산도 쉽게 오르는데 그까짓 평지
결과는 중도 기권이었다. 평지를 두어 시간 달리는 그까짓 마라톤이라고 생각했지만 만만하게 보였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추월해 달리는 것을 보고 기권하고 설악산에서도 사라진 것이다. 그 일로 깨달음을 얻었는지 확인하지 못했지만 그 이후 설악산 다람쥐의 소식은 듣지 못했다.

아무리 세계기록을 갖고 있는 산악인이어도 한 번에 한 걸음씩 갈 뿐이다. 또한 산에서는 재빠른 ‘다람쥐’라도 마라톤까지 제패할 수는 없다. 마라톤은 마라톤을 위하여 땀을 흘린 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출근해서 북한산을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배운다. 사람들이 길을 가다가 넘어지는 것은 저렇게 높은 산에 걸려서가 아니라 작은 돌부리에 걸려서이다. 살아가는 일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크든 작든 세상에 만만한 일은 없다. 땀을 흘려야 오를 수 있고 겸손해야 배울 수 있다.

윤세영 수필가
#북한산#엄홍길#마라톤#땀#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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