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야무진 그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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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듬히 햇볕이 드는 마루에서 등 굽은 할머니의 긴 머리를 빗겨 맵시 있게 비녀를 꽂아드리는 열 살 아이의 손놀림이 민첩하다. 할머니는 눈썰미 있는 손녀딸이 귀엽고 애처롭지만 드러내 애정을 표현하기에는 며느리와 장성해가는 손자들 눈치가 보인다. 아들이 밖에서 낳아 데리고 온 손녀딸이기 때문이다.

생모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이 아이는 아버지 손을 잡고 이 집에 들어와 처음 만난 가족이 낯설고 두렵기만 했다. 그나마 자신을 귀여워해주던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간신히 중학교만 졸업하고 서둘러 집을 떠났다. 도시로 나가 미장원에 취직하여 받은 첫 월급이 3만 원, 1983년의 일이었다.

영민하고 부지런한 그녀는 빠르게 솜씨를 익혔다. 몇 년 후 서울로 진출했고, 어느덧 일류 미용실에서 일하는 헤어 디자이너가 되었다. 그 무렵에 그녀를 만났다. 상냥하고 열심이었다. 그때부터 한 달에 한 번은 그녀에게 머리손질을 받았으니 우리는 어림잡아 200번 이상 만난 셈이다. 그런 그녀가 몇 달 전에 강남에 자신의 미용실을 개업했다. 월급 3만 원의 조수로 시작해서 순전히 노력의 대가로 이룬 그녀의 성공이 정말 장하고 가슴이 뭉클했다.

“촌년이 출세한 거지요? 기댈 곳 없는 환경이었지만 저는 세상에 태어난 게 늘 좋았어요. 신세를 한탄하면 뭘 해요? 긍정적으로 열심히 살면 뭐가 되든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는 30년 노력의 결실도 기뻤지만 평생 어렵고 무서운 큰오빠가 개업 축하 화분을 보내주며 건넨 칭찬이 더 기쁘다고 했다.

“우리 형제 중에 네가 제일 낫다.”

그녀는 고향에 계신 편찮은, 자신을 키워준 ‘큰 엄마’에게 오랫동안 효성을 다했다고 한다. 큰 엄마는 돌아가시기 전 비로소 그녀의 손을 잡고 미안하고 고맙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형제간에는 진즉에 경계를 허물었다. 미운 오리새끼였던 그녀가 몸을 아끼지 않는 헌신과 밝은 성격으로 어색한 가족을 진정한 가족으로 만든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할머니의 머리를 빗겨 드려서 그런지 지금도 머리를 올리는 헤어스타일이 가장 자신 있다고 말하는 그녀.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고단한 직업인데도 종달새처럼 가볍고 명랑하게 노래하듯 일하는 그녀를 보면 참 기분이 좋다. 더구나 그녀의 머리손질이 끝나면 거울 속 나는 5년은 더 젊어 보인다.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윤세영 수필가
#할머니#손녀딸#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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