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워킹홀리데이, 무작정 떠나면 득보다 실이 많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7일 03시 00분


일하면서 여행도 할 수 있는 워킹홀리데이(워홀·working holiday) 프로그램에 참가한 20대 한국 여성이 호주에서 참변을 당했다. 워홀비자(관광취업비자)로 10월 16일 호주에 간 반모 씨(23)는 24일 오전 4시 반경 호주 브리즈번 도심의 위컴 공원에서 머리가 심하게 손상돼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반 씨는 이날 오전 3시 반에 청소 일을 하러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참혹하게 살해됐다.

워홀은 만 18∼30세 젊은이들이 1년 동안 해외에서 여행과 일을 병행할 수 있는 제도로 1995년 호주와 처음 협정을 맺었다. 지금은 캐나다 일본 영국 뉴질랜드 대만 덴마크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 17개국에 우리 젊은이들이 나가 있다. 지난해 워홀비자로 협정국에 간 한국 젊은이들이 4만8000여 명, 이 중 70%인 3만4000여 명이 호주에 몰려 있다.

하지만 현지에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 영어 능력이 떨어지면 좋은 일자리는 언감생심이다. 때로는 청소나 설거지도 감수해야 한다. 운이 좋아 공장 같은 곳에 취업해도 넉넉지 않은 급여에 혹사당하는 경우가 많다. ‘젊은 날 고생은 돈으로도 살 수 없다’지만 현지 사정을 제대로 모르고 ‘일단 가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무작정 떠났다가는 고생만 하거나 위험하기까지 하다.

해당 국가도 이들의 안전엔 무신경하다. 유학생이나 주재원과 달리 아르바이트로 전전하는 워홀러들은 안정적인 주거환경을 갖기 어렵다. 무엇보다 안전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워홀러들이 교통사고나 절도사건에 연루되거나 심지어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성추행 사건도 심심찮게 발생한다는 게 현지의 전언이다.

우리 정부도 이제 무작정 젊은이들을 해외로 내보낼 게 아니라 해당국과 협정을 꼼꼼하게 맺어 워홀러들이 사고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제도 정비에 나서야 할 것이다. 워홀러 프로그램과 유사한 미국의 WEST 프로그램은 한 해 한국인 참가 인원을 200명으로 제한하고 인턴십을 주선하는 스폰서(후원업체)도 갖추도록 하고 있다. 현지 대사관과 영사관은 각지에 흩어져 있는 워홀러들에 대해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젊은이들의 도전정신을 시험하는 워킹 홀리데이가 워킹 호러데이(horror day)로 바뀌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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