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선 칼럼]전교조, 法이 아니라 業에 진 것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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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의 오늘 곤경은 법 때문이 아니라 본업에 소홀했던 어제 때문
학생과 학교는 떠나고 사회적 지지마저 잃으니 허물이 더 크게 보이는 것
선택에 책임지고 재기하려면 남 탓 말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심규선 논설위원실장
심규선 논설위원실장
전교조에 대한 대접이 영 시원치가 않다. 전교조로서는 청천의 벽력같은 일을 당했는데도 동정하는 목소리가 별로 들리지 않는다. 매스컴의 보도 태도도 예전 같지 않다. 해직자 9명을 내치지 못해 5만9828명이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는 평까지 한다. 그러나 그건 아니다. 양자택일의 궁지에 몰렸을 때 실리보다 명분을 택한 조직은 종종 있어 왔고, 선택에 책임만 진다면야 굳이 깎아내릴 이유는 없다.

전교조와 정부 사이의 법리 논쟁에도 별 관심이 없다. 전교조가 주장하듯 정부가 법의 불비(不備)를 악용해 전교조를 찍어 낸 것이라면 바로잡을 일이다. 전교조가 이겨 법의 우산 밑으로 다시 들어온다면 수용하면 그뿐이다.

다만, 법을 우습게 여겨 왔던 전교조가 이번에도 법에 호소하려는 데는 거부감이 있다. 전교조는 그동안 연가투쟁, 민주노동당 가입과 불법 후원금 전달, 시국선언, 교육감 선거 불법지원 등 ‘정치적 행위’로 여러 차례 법의 단죄를 받고도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한 적이 없다. 불리한 판결이 나오면 오히려 ‘정치 탄압’이라며 거미줄 걷어내듯 쉽게 무시해 왔다. 그러다가 이번에 법이 거미줄이 아니라 포승줄임을 깨달았을 것이다.

전교조가 이번에도 정치 탄압이라는 낡은 프레임을 쓰려 한다면 제2의 패배가 기다린다. 전교조는 법에 진 것이 아니라 업(業)에 진 것이다. 받들어 모셔야 할 학생과 학교보다 정치판에서 대접받는 데 정신이 팔려 교사라는 직업(職業)에 졌다. 조직이기주의에 빠져 주로 반대하는 데 큰 힘을 씀으로써 교원단체로서의 과업(課業)에 졌다. 의식화 교육, 친북 성향, 교원 평가 반대, 교육 포퓰리즘 등의 문제로 사회의 지지를 얻는 데 필요한 평소의 일과 몸가짐, 소업(素業)에도 졌다.

결과는 어떤가. 학생들 수업 불만의 30%가 ‘교사의 정치적 편향’이라는데 대부분은 전교조 교사들이나 할 법한 반정부, 반체제 발언들이다. 전교조의 최대 연대세력이 될 만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아쉽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분위기다. 반(反)전교조 단체가 낸 성명서의 제목은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됨을 전 국민과 함께 경축한다’였다. 이런 걸 전부 박근혜 정부의 음모로 돌릴 순 없다.

전교조만큼 시대 흐름에 올라타 무섭게 세를 키운 조직도 드물다. 그들이 ‘참교육’의 깃발을 올렸을 때 기존의 교육제도, 교육관료. 교원단체는 하루아침에 ‘악의 축’이 됐다. 자식뻘, 손자뻘 되는 후배들의 입은 매서웠고, 특정인과 조직을 비난하는 성명서는 거칠었다. 전교조의 표적이 되면 추풍낙엽이었다. 그들이라고 왜 할 말이 없었겠나. 그러나 그들의 항변은 들어주려는 사람조차 없었다. 그런 질풍노도 속에 전교조는 일거에 교사의 성직관(聖職觀)을 깨고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쟁취했다.

세월이 흘러 전교조도 평가의 대상이 됐다. 그리고 공수(攻守)가 바뀌었다. 그래도 전교조는 나은 편이다. 아직도 보청기를 끼고 그들의 주장을 확대해서 들어주고, 현미경으로 법전을 샅샅이 뒤져 가며 두둔하는 신문과 단체들이 남아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전교조는 거기서 값싼 위안을 얻어 상황 판단을 그르치는 일은 없길 바란다. 허물은 말하지 않는 집안 식구의 응원은 공허하다. 거기에 기대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전교조는 20년 넘게 ‘전교조 키즈’를 양산해 왔다. 학생들의 사고방식과 행동 패턴을 ‘전교조 이전’과 ‘전교조 이후’로 나눠야 할 정도다. 부정적인 영향이 쌓여 오늘을 만든 것이다. 이도 업이라면 업이다. 뭐가 잘못됐는지 깨닫지 못한다면 다시 법의 보호를 받는다 한들 또 다른 위기의 시작일 뿐이다.

전교조는 지금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다가 처마 밑에서 비를 긋고 있는 신세다. 하늘만 탓해서는 더 심한 소나기를 만날지 모른다. 징징거리지 않는 게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는 자세다. 친(親)전교조 교육감이 있는 곳에서도 스스로 젖줄을 끊어야 한다. 법이 문제라면 해직자도 조합원이 될 수 있도록 법개정 운동부터 하는 게 순리다. 그 정도는 한국교총도 도와야 한다.

우리 교육계에서 전교조가 설 땅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해직도 두려워 않고 노조를 만들던 24년 전의 담대함을 회복하고 본업에 충실하면 길은 있다. 그날을 위해 지금은 거리에서 촛불을 들 때가 아니라 교실로 돌아가 더 단단히 백묵을 잡을 때다. 단언컨대, 촛불 몇 개로는 전교조의 앞길을 밝힐 수 없다.

심규선 논설위원실장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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