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내가 당신이라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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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일요일에 결혼식을 앞둔 신부 아버지와 점심을 함께 먹으면서 딸을 결혼시키는 아버지의 심정을 들었다.

“내가 결혼식을 준비해 보니까 지금까지 남들의 결혼식을 충분히 축하해 주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렇게 정성이 들어가는 일인 줄 몰랐어요.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신경을 썼겠구나 싶더라고요.”

사실, 청첩장을 자주 받으니 형식적인 축하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청첩장을 잘 받았다면서 “벌써 딸이 결혼을 하느냐,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날 꼭 가서 축하해 주겠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분들이 참으로 고맙더라고 했다.

어제는 남편이 지방에서 근무하게 되는 바람에 주말부부가 된 분을 만났다. 맞벌이 부부임에도 남편이 서울에서 직장을 다닐 때에는 집안일을 전혀 돕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나이 오십에 아내의 보살핌이 닿지 않는 독립생활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신이 난 눈치였어요. 워낙 사람을 좋아하는지라 집으로 초대하여 실컷 놀았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손님들이 다 돌아가고 난 뒤 혼자 집 안을 치우는 게 장난이 아니잖아요. 요즘은 집으로 손님을 부르지 않는 것 같아요. 이래서 다 자기가 해봐야 안다니까요.”

그의 아내가 내게 소곤거렸다. 그동안 아내가 손님 뒤치다꺼리 하느라고 얼마나 수고했는지, 직장을 다니며 살림하는 게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지를 하나하나 실감하면서 남편은 드디어 밥 빨래 청소 어느 것 하나 아내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하기에 이르렀다고 했다.

영국의 한 기업에서는 역할 바꾸기 연극 공연 이후에 노사 간에 갈등이 줄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비록 연극이지만 근로자는 사장의 역할을, 임원은 근로자의 역할을 하다 보니 저절로 서로의 처지에 대한 이해가 생긴 것이다.

“살아가면서 관혼상제의 모든 과정을 겪어봐야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 같아요.”

신부의 아버지는 이제야 조금씩 철이 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람이 태어나고 성장하여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결혼을 시키고 부모를 여의는 일까지 그 모든 과정을 통해서 삶을 완성해 나가는 게 아닐까. 오늘은 무심코 서랍에 넣어둔 청첩장을 꺼내 축하의 전화를 걸어야겠다. 나에겐 자주 받는 청첩장이어도 당사자들에게는 단 한 번뿐인 소중한 결혼식이다.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윤세영 수필가
#결혼식#아버지#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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