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시헌]추석 단상(秋夕斷想)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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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헌 전 언론인
이시헌 전 언론인
고교 2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신문을 펼쳐 보니 한국외국어대에서 외국어 웅변대회를 연다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참가 부문은 영어, 중국, 독일어, 러시아어 등 4개 부문이었다. 원고를 제출해 심사를 받고 예선과 본선을 거치게 되어 있었다. 나는 독일어를 배운 지 6개월여밖에 안 됐지만 대회에 나가기로 맘먹고 원고를 스스로 작성하기로 했다.

원고를 모두 기억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내용은 이렇다. 동독의 한 공장 근로자가 공장 울타리 벽에 콜타르로 ‘자유’라는 낙서를 해서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불사조처럼 일어서서 라인 강의 기적을 이룬 독일 국민을 본받아 우리나라도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야 한다는 줄거리였다. 자유가 없는 동독의 경제가 낙후된 사례에서 보듯 경제 발전의 기초는 자유이며,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자유를 신장시켜 경제 기적을 이루자는 주장이었다.

원고 심사 결과는 1956년 10월 16일자 동아일보 문화면에 발표됐다. 글자 크기는 작았지만 내 이름이 있었다. 내 이름이 신문에 실렸다는 사실에 벅차고 기쁜 마음이 들었다. 나는 계속 준비했다. 10월 19일 예선을 치르기 위해 하루 전까지는 상경해야 했다. 초행길이라 망설임도 있었으나 포기할 수도 없었기에 무작정 광주역을 떠나는 저녁 기차를 탔다.

예선은 창덕궁역 휘문고 강당에서, 본선은 지금은 불타버린 을지로 입구의 원각사에서 열렸다. 본선에 오르자 예선 때보다 자신감이 생겼다. 웅변을 마친 뒤 독일대사관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함 박사’라는 분이 다가와 잘했다며 격려를 해주셨다. 심사 결과 장려상장과 함께 부상인 만년필을 받았다. 이튿날 아침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이는 조회시간에 교장선생님이 상장과 부상을 전달해 주며 나의 도전정신과 창의성을 격려하셨다.

내가 그때 그 일을 되새기는 것은 크고 작은 난관을 이겨내고 발전을 거듭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해 나가는 우리나라의 저력이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었고, 나날이 발전하는 정보기술(IT)산업은 3차 산업혁명 너머 신세계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1904년 다이오드 개발, 1947년 트랜지스터 발명으로 시작된 반도체산업은 경쟁이 가속화되더니, 작년 5월 삼성전자는 배리스터라는 신소재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우리나라의 과학 기술 분야가 많아졌다. 바야흐로 한강의 기적이 본궤도에 오른 것이다.

추석 전 우주과학에 관한 뉴스와 신간 서적을 보다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인간이 발견한 우주는 오직 4%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이는 이 우주가 얼마나 방대한 미지의 공간인지 다시금 일깨워준다. 우주에 아직도 무한한 세계가 남아 있듯 우리나라도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가 남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시헌 전 언론인
#우주#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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