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윤병세]“한국이 자랑스럽다”며 울어버린 美노병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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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세 외교부 장관
윤병세 외교부 장관
미국 뉴욕 시간 9월 27일 금요일 오후 8시. 5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외교장관을 포함한 12명의 외교장관들, 그리고 여타 3명의 수석대표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속속 안보리 회의장에 입장하였다. 카메라 셔터가 연신 조명과 함께 터졌다. 의장국인 호주 대표가 표결을 진행하자, 말발굽형 테이블을 둘러싼 열다섯 명의 손이 동시에 올라가고 안보리 결의 2118호가 채택되었다.

케리 미 국무장관과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의 발언에 이어 필자도 시리아에서의 화학무기 사용을 강력히 규탄하고, 북한 등 다른 국가에서도 화학무기가 영구히 제거되어야 함과 결의의 완전한 이행을 강조했다. 금세기 최대의 인도적 재앙으로 일컬어지는 시리아 내 민간인에 대한 화학무기 사용 후 한 달여 만에 시리아 사태의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단합된 의지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대한민국이 신뢰받는 안보리 이사국으로서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는 현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오후 10시 반, 회의가 종료되자 회의 참석자 모두는 자축하면서 이번 결의를 전례 없는 국제사회의 외교적 쾌거로 칭했다.

피로에 지친 듯한 케리 장관이 악수를 청하였다. 그 순간 필자에게도 누적된 긴 피로가 몰려들었다. 안보리 회의는 유엔 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한 필자가 숨 가쁘게 보낸 한 주의 마지막 공식 일정이었다. 전 세계 193개 회원국이 참석한 최대의 다자외교 무대에서 유엔의 3대 이사회인 안전보장이사회, 인권이사회, 경제사회이사회의 이사국으로 활동하고 있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국가의 수석대표로서 안보리 회의는 물론이고 30여 개에 달하는 일정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신뢰외교’와 ‘지구촌행복’ 기조는 필자의 모든 일정을 관통한 핵심 메시지였다. ‘안보, 인권, 개발’이라는 국제사회의 3대 목표에 맞춰 북한 핵 폐기 문제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비무장지대(DMZ) 세계평화공원,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보편적 인권 차원에서의 군대 위안부 문제, 빈곤퇴치를 위한 우리의 새마을운동 경험과 개발협력 정책 등 신정부의 핵심 외교정책에 대해서도 국제사회에 소상히 설명했다. 미국, 중국 등 주요국과는 북한 문제, 동북아와 중동 문제 등을 심도 있게 그리고 격의 없이 협의하였다.

또한 우리 기업의 진출이 날로 늘고 있는 지역에서 역내 협력체로서 위상을 강화하고 있는 아랍연맹, 걸프협력이사회, 카리브중남미공동체 등과는 사상 최초의 전략대화를 갖고 정례화 및 관계발전 로드맵 합의 등을 통해 윈윈하는 세일즈 외교의 기반을 강화했다. 무엇보다도 멕시코, 인도네시아, 터키, 호주 외교장관들과 회의를 갖고 다양한 글로벌 이슈를 다루는 새로운 5개 중견국 협력메커니즘, 일명 MIKTA를 발족시키고, 이를 통해 G20, 유엔 내에서 뿐만 아니라 새로운 국제질서의 형성을 주도키로 하는 데 우리가 기여한 것은 우리 외교사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국제사회 내 책임 있는 일원이자 신뢰받는 동반자로서의 우리의 위상은 새천년개발목표(MDG)에 관한 고위급회의에 유럽연합(EU) 등과 함께 기조연사로 초청받은 것에서도 확인되었다. 유엔총회 행사는 아니지만 한미동맹 60주년을 기념하는 코리아소사이어티 행사에 각계 각층 600여 명의 인사가 참석하였다. 특히 필자가 20여 분에 걸쳐 한미동맹의 과거, 현재, 미래에 관한 연설을 마쳤을 때, 청중이 기립박수를 쳤고 90대의 한국전 참전 노병이 다가와 “나는 한국이 자랑스럽다”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감동의 순간도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유엔 회원국 수석대표들을 위한 리셉션에서 필자에게 “한국은 최고의 친구이자 강력한 동맹”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한 주간의 일정을 마무리한 지금, 22년 전 우리나라가 유엔에 가입하던 때 주유엔 대표부 참사관으로 근무하면서 당시 외교장관의 역사적인 유엔 가입 연설문을 작성했던 시절이 떠오른다. 당시 연설문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국제사회에 천명했다. 하나는 “보다 자유롭고 평등하고 풍요로우며, 정의와 법의 지배가 실현되는 새로운 세계질서를 형성해 나가는 데 적극 동참할 것이다”라는 다짐이었다. 다른 하나는 “남북한이 각각 별개의 회원국으로 시작하지만, 오늘은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기어코 달성하겠다는 한민족의 굳은 결의를 더욱 새롭게 하는 날이 되어야 할 것이다”라는 다짐이었다.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 톰 행크스와 멕 라이언이 서로의 만남을 꿈꾸다 조우했을 때 했던 명대사 “이것은 운명이다”처럼 우리가 운명처럼 우리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의 꿈이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외교의 시계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
#안보리 결의#화학무기#시리아 사태#케리 장관#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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